마5:13
흡사 도인처럼 보이는 이 현주 목사의 강의를 들으면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나도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 신념에 찬 눈빛이었습니다.
순간 번뜩이며 스쳐 지나가는 것은 100% 죄인을 18번으로 생각하는
나의 신학이 비굴해 보이기까지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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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고 관점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적어도 목표가 나는 어쩔 수 없는 죄인입니다 라는 쪽하고
난 예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쪽하고의 게임은 해보나 마나 아닙니까,
이것은 바울 사도가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나를 본받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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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것과 어쩌면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개신교는 점차 "게토(ghetto)화" 되고 있는 느낌입니다.
성도들이 거룩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싸구려 복음이 범람하는 이때
내 눈에 비친 감리교 목사님의 행함에 대한 도전이 못내 고계를 떨구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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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시대 교회는 세상과 죄에 맞서 담대하게 싸우기 보다는 끼리끼리
모여 산에다 굴이나 파고 동굴에 갇혀서 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답니까,
암만 생각해도 성도라고 떠들고는 있지만, 밖에서 보면 정신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빈민굴이나 다를 바가 없는 천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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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값싼 은혜를 추구하면서 자신의 유익만을 위해
살아가는 교인들의 수가 늘어가는 우리 개신교의 모습은 나의 자화상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게토(Ghetto)화 현상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지나치게 '이신칭의'를 강조한 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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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네 동의합니다. 누가 뭐라고 합니까?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 믿고 바로 이 세상을 떠나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세상 안에
살아야 합니다. 누누이 말한 것처럼 이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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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에 살아야 한다 그 말입니다. 그것도 한참을 빛으로 소금으로,
옛날부터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 역할과 부패를 막는 용도로 사용해 왔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세상의 죄와 더러움과 부정함에 저항 하셨고 그 부패를 막고
치유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몰고 오셨듯이 성도는 빛과 소금의 역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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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주의할 것은 차차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지 않았고 성도가 된 순간 찐빵이든 묵은 빵이든 간에 성도=빛, 소금
이라는 것입니다. 전자와 후자의 차이는 미묘하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답니다.
존재론적 요구가 실천적 요구보다 앞서야 하는 이유는 소금과 빛의 사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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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당할 수 있는 힘이 우리 안에 나오지 않고 빛과 소금이신 예수님과의
관계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세상을 이길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다는 것 아닙니까, 교회가 불의에 맞서는 것도 중요하나
정치 단체나 사회단체로 전락하면 삼천포로 빠지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개독당이라고 부르는지 아시나요?
그리스도인의 신분과 사명(13-16)
a.세상의 소금인 예수의 제자들:13
b.세상의 빛인 예수의 제자들:14-15
c.제자들이 소금과 빛이 될 때 드러나는 하나님의 영광:16
산상수훈의 주제(17-20)
a.율법과 선지자를 완성하러 오신 예수:17
b.율법을 성취한다는 말이 가진 함의:18-19
c.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의를 능가하는 새로운 의: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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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우리 스스로는 선을 말하고 도덕을 운운해 봤으나 결국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이실직고 합니다. 값없이 주셨지만 댓 가를 치른
은혜임을 기억하고 오늘도 신실하신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겠습니다.
한국 교회의 싸구려 복음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도 성령께서 나를 온전한 데까지
이끌고 가실 것을 믿사오니 내가 순종하므로 자유와 회복을 누리게 하옵소서.
2014.7.10.thu.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