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5:1
남양주 팔 현 리의 산속은 진즉에 겨울이왔습니다.
산상수훈을 듣기에 안성맞춤인 이곳에 30명 안팎의 제자들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만난 공부방 분위기가 감개무량 입니다.
꼭 이럴 때 옛날 얘기 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지만 옛날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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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밤까지 물불을 안 가리고 하루 종일 강의 듣고 토의할 때가 있었답니다.
아, 옛 날이여! 산상수훈을 해석하는데 3가지 안내판이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 전파, 고치심은 울 주님의 3대 사역이었는데(마4:23)
이 일의 목표가 하나님 나라였다고,
이 때문에 전파하시는 사역을 중심에 두고 가르치는 사역과 고치는 사역이
감싸기 구조(inclusion)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하나님나라가 마태복음의 주제인데 특별히 산상수훈에서도
이 하나님나라를 전달하기 위하여
4:23엔 가르치는 내용을
9:35엔 고치는 내용을 묶어서 기록하고 있다는 말 같습니다.(앗 싸)
근데 신기하게도 팔복의 내용 에서도 이 감싸기 구조가 있다고 합니다.
산에 올라 가르치시는 예수(1-2)
팔복: 제자도의 혜택(3-12)
a.심령이 가난해지는 축복:3
b.애통하게 되는 축복:4
c.온유하게 되는 축복:5
d.의에 주리고 목마르게 되는 축복:6
e.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는 축복:7
f.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는 축복:8
g.화평케 하는 자가 되는 축복:9
h.의를 위하여 박해 받는 축복;10
I.선지자들과 같은 박해를 받는 제자들의 축복:11-12
이 정도야 뭐 밥 먹으면 성경책만 들여다보는 학자니깐 그렇다 손치고
우리의 00교수님께서 특유의 억양으로 말씀하시기를 "마카이오이"라는
히브리어는 "복이 있나니"라는 뜻인데 우리말로 행복하다는 말이랍니다.
저도 산상수훈 들으면서 처음 듣는 말씀이니 기억해 놉시다.
그러니까 천국이란 말은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말로 천국의 개념인즉
공간적인 장소가 아니고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역동적 개념이라는 것에
밑줄 딱 그어 놓자고요. 교수님 왈,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감히 다이렉트로
부르질 못하고 대신 하늘이라고 불렀다 누 먼.
그래서 유대인의 하늘나라(=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은 저 하늘 어디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임재를 말하는 것이라는 것쯤
나랑 놀았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요. 그래도 모르면 또 적어야제.
시간이 건 두 시간이 돼서 주위를 돌아 본께로 오늘은 항상 졸던
유두고도 없고 수업태도가 상당히 좋아 보이네요. 뭔 일들이여~
옆에 앉은 **자매님께서 감기가 걸렸는지 추워 뵈기에 제 가죽 잠발 벗어서
기사도를 발휘했습니다. 으쓱.
화두가 "누가 심령이 가난한자인가?"였는데 이구동성으로 거지를 지명했습니다.
거지는 절대 찬밥 더운밥을 안 가린다나. 독일의 요아킴 예레미아스 라는
학자가 바로 이 거지 이론을 냈는데 기가 막힌 발상이라고 나도 생각했습니다.
이미 임한 천국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버리면 그 천국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은 소유권을 주께 넘기면 나는 죽고 내 안에 살아있는 분이
맘대로 날 통치한다(Lordship)는 뭐 그런 말 같습니다.
저는 인생여정이 험악해서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인생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 보다 더 나은 義만이 하나님나라의 결과이자
조건이라는 말씀 참 말입니까,진짜냐고요? 그래도 내 집 앞에다 세워놓은
자가용에 무지막지하게 딱질 붙여놓은 00 구청 놈 들 본때를 보여줘야
되는데 자존심 안 접으면 천국 못 간다니 아, 어쩌면 좋습니까,
하나님 나라 백성의 모습을 보여 주시니 감사 합니다.
이미 예수님께도 광야의 시험을 받으신 것처럼 그 길을 따르는 참 백성은
이 땅에서 부당하게 취급받고 무시되면서도 이에 투쟁하는 대신 끝까지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에 의해 구원 받기를 겸손이 기다리는 자 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오주님, 내가 내 자존심을 거지처럼 내 팽겨 치지 않으면
절대로 극상품이 될 수 없어서 이제 내 소유권을 주님께 드릴 랍니다.
주님, 이제 나는 죽었사오니 나를 다스려 주옵소서.
2004.1.8.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