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있는 분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애굽기3:14)
성경은 하나님을 우리에게 게시해 주는 책입니다.
그 분은 어떠한 분이시며 신앙생활을 하는 나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272;eos 데오스라는 말의 첫 글자이며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름이고 애훼는 호칭이며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야훼는 큰 힘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니느웨로 가라고 하였지만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이 일자 사공들은 자신들의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기도를 한 후에 배를 뒤져서 요나를 찾았고 요나는 자신의 죄악으로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하여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하였으며 이 일을 행했던 분들이 믿었던 하나님도 그 사람들이 믿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누가 만드셨는가?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태초에 제일 첫 번째로 만드신 분을 하나님이십니다.
종교철학자들은 과연 첫 번째 기차를 누가 만들었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두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절대적이며 초자연인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도덕적, 비윤리적, 비공유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영원하시며, 전지하시며, 전농하신 분이시며 우주에 편재해 계신 분이십니다.
두 번째는 상대적이며, 윤리적이며, 공유하시는 분이십니다.
성실하시며, 진실하시며, 인애가 많으시며, 사랑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인생을 결산하면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험한 인생길을 지났지만 지나고 보니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한 것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열심히 이 일을 이루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열왕기상19:10)
신약에서는 하나님이 예정하시어 이렇게 인도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갈라디아서1:15)
아브라함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게 되니까 독자인 이삭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여겼으며 약속을 못 믿고 장가들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이삭을 낳는다고 약속을 하였어도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알고 난 후에는 이삭도 제물로 드렸습니다.
전능하신 나의 하나님으로 삶의 현장에서 고백하지 않는다면 관념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알고 계신다고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울게 없습니다.
위기에 처할 때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굉장히 두려운 분이십니다.
내가 딴 짓을 하면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지갑에 돈이 떨어지면 불안해하고 돈이 많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것은 믿음이 적은 것이다.
비록 돈을 적게 가졌지만 하나님께서 내 형편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필요한 때에 도움을 주리라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하나님은 뭐든지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 위배되거나 말씀에 위배된 일을 하지 못하십니다.
우리는 전도하여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천국을 마음대로 보낼 수 없고 믿음으로만 갑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절대 기준이 성경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절대로 지옥에 보낼 수 없습니다. 불변성
하나님을 이론 적으로 아는 것이 신학이고 하나님은 선한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모든 형편을 잘 알고 계시며 인도하시리라고 믿으며 삶에서 그렇게 적용하며 사는 삶이 믿음의 삶이며 복된 삶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