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은 마태복음 3장 12절-4장 11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주저하는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십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예수께로 향하는 성령과 그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서 40일 동안 금식하십니다.
세 가지 시험은 모두 마귀의 ‘만일 당신이 그러하다면’이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처음 두 가지 시험은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그렇다면 돌을 빵으로 변화시키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은 마귀를 경배하면 세상을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스스로를 방어하십니다.
마귀는 떠나가고 천사들이 그의 곁을 지킵니다.
인도네시아에는 사막이 거의 없습니다.
사실, 이 곳은 언뜻 보면 마치 파파야와 구아바, 망고, 코코넛, 코코아, 커피, 옥수수, 양배추,
당근, 토마토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과일들과 높이 솟은 화산들의 천국과도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어제 설교 본문에서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라고 언급한 바로 그 의미가 제가 이 곳에 오게 된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우리들 교회의 선교팀의 일원으로써 인도네시아에 갔습니다. 선교팀안에는 태권도팀,
찬양팀, 연극팀 그리고 어린이 놀이팀의 4개 부서가 있습니다. 태권도팀과 찬양팀과 연극팀은
모두 공연을 위한 팀입니다. 그 공연의 화려함이 저에게는 유혹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저를 유혹에서 꺼내 주셨고 나의 역할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셨습니다.
먼저 태권도의 경우는 제가 50세 때인 13년 전에 운동을 그만두었습니다.
제가 태권도 팀 안에서 해야 할 역할이 없었음에도 젊은 청년들과 함께 공연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교만한 생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발차기를 하면서 허리 통증을
악화시켰고 결국 팀에서 나와야 했고 허리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저는 공연 출연자에서 관객으로, 흥을 돋우는 역할로 그리고 영어를 하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위한
통역자로 그 역할이 바뀌었습니다.
연극 공연에서 저는 두 주인공 역할들 중 하나를 맡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흥미로웠지만 제가 지닌 잘못된 태도가 문제였습니다.
다시 한 번 교만했습니다.
단막극에서의 주인공 역할은 세 개의 공연 팀에 동시에 속해있던 한 재능이 뛰어난 여성분이
맡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태권도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에 그녀는 심한 무릎부상을 당했습니다.
그것은 그녀가 더 이상 찬양 팀과 연극 팀에서 공연을 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연극 공연은 불가피하게 취소되었습니다.
갑자기 저는 무대에 설 기회를 잃었습니다.
(그녀의)부상으로 인해 저는 방관자가 되었습니다.
나의 교만함은 무대 한가운데서 나의 능력을 과시하기를 원했지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겸손해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마을과 교회들을 찾아가기 위해서 매일 장거리 이동을 해야만 했고, 저에게는 이번
사건과 그에 따른 나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좀 더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정해진 일이 없었던 저는 일상적인 일들을 하게 되었습니다.
격파준비를 하는 태권도 팀을 돕는다던지 팀의 리더가 빠진 찬양팀을 격려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영어사용자 팀과 함께 이번 여행에 대한 나의 경험들을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의 오락을 함께 준비하기도 하고 새벽 큐티 나눔에도 참여했습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유사한 점들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보이는 곳 마다 격려와 칭찬을 해 주었지만 이 모든 일은(특별한 주목을 받는 것이 아닌)
일상적인 평범한 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일상적인 일들이
평안하게 느껴졌고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목자 모임에서 초원지기님이 다른 목자들에게 저에 대한 질문을 하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이 저에 대해서 알고 싶어 했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으로써 우리들교회의 한국 사람들이 하는 행동 중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었습니다.
한 분은 제가 담임 목사님을 통해서 얻은 중요한 깨달음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별 인생이 없다(No special life)’는 말씀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번 인도네시아 선교 여행은 저에게 이 교훈의 진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별 인생은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면서도 특별해 지려고 노력했던 저를 하나님은 가장 선한 방법으로 겸손하게 하셨고
특별해 지려고 하는 곳에 평안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평안함은 평범한 것에서부터 옵니다.
‘평범해 지는 것‘ 이것이 저의 적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