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7일 월요일
누가복음 13:18-21
“겨자씨와 누룩”
안식일에 열여덟 해 동안 허리 구부러진 가련한 여인을 고치셨다. 연약한 인생을 안식일에 고쳤다는 이유로 회당장은 분을 내었다. 그는 신학에 능통한 자였다.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안식일에는 하지 말라. 그가 끄집어 낸 신학은 얼핏 타당성이 있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회당장의 이러한 태도를 외식이라고 정의한다. 그것은 일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일이었다.
“네가 보기에는 열여덟 해를 기다렸는데 그까짓 하루쯤 기다린다고 동토 나겠느냐는 말이지. 나도 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다. 남의 일이라 찬 죽 갓 둘러 먹듯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연약한 인생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야말로 바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임을 온 몸으로 보여주신 것이다. 더 나아가 구부러진 시대상을 꾸짖는 예수님의 음성이다. 안식일은 일 하지 않음으로 안주하는 날이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서 자유를 선포하는 날인 것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정신은 얽매임을 푸는 열쇠요 자유헌장인 것이다.
여인에게 있어서 잊을 수 없는 안식일이었다. 한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자비였다. 오늘날도 주일을 지키는 것이 의무라고 한다면 이것은 대단히 잘못된 만남이다. 주일은 기쁨의 날이요. 자유의 날이다. 치유와 회복이 일어나는 생명의 날이다.
한 여인의 자유에 대해서 상반된 시각이 상존하는 현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성경의 관통 핵심인 하나님 나라를 가르치신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서 설명하신다.
겨자씨는 그야말로 바람이 불면 날아가 어디에 떨어진지도 모를 정도로 작은 씨이다.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허리 구부러진 여인은 절망의 땅이었다. 겨자씨처럼 보잘 것 없는 인생이었다. 그러나 주님의 손이 그녀에게 닿자 그녀의 구부러진 인생이 펴진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다. 회당장은 그녀의 절망보다는 율법이 보였다. 그러나 주님은 절망의 겨자씨였던 여인에게서 소망의 나라를 본 것이다. 주님 앞에는 하찮은 인생은 없으시다. 그녀는 즉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아마도 그녀의 입술에는 찬양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회복된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많은 무리가 안식일에 기쁨을 누렸다. 이것이 진정한 예배요 찬양이다. 불행의 밭에서 소망의 겨자나무로 자라났다. 새들이 깃들이게 된 것이다.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어려웠던 여인이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이런 변화된 모습을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성장이 이처럼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성숙은 보이지 않는 나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것은 누룩과 같은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그녀는 허리가 펴졌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얽매고 있던 불행을 걷어내고 소망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세상을 원망과 절망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희망을 노래하였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성장을 노래하였다면 이제 레파토리를 바꿀 때이다. 성숙한 한국교회가 되기를 위해 애쓰고 기도하여야 할 것이다. 성장과 성숙은 함께 가는 두 바퀴와도 같은 것이다. 겨자씨의 꿈을 이루고 누룩의 변화를 위하여 기도하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