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5일 토요일
마태복음 2:13-23
“피난과 귀향”
주님은 태어나심부터 심상치 않으셨다. 동정녀가 임신을 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으셨으면 사생아가 될 뻔 하셨다. 태어나신 곳조차 베들레헴 마구간이었고 누이신 곳이 구유였다. 누가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산모가 진통을 하는데도 어느 누구하나 선뜻 자신의 방을 양보할 사람이 없다는 무정한 시대였다. 자기 땅에 오셨지만 아무도 환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하셨다. 별을 움직이시는 우주쇼를 펼치신다. 그리고 축하객으로 먼 곳에 있던 이방인 동방박사들을 동원하셨다.
오늘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는 헤롯왕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죽인다.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였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죽이려는 철저히 계산된 살육이었다. 그리스도를 없애려는 사탄의 발악이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인간 헤롯의 계획을 이미 알고 계셨다. 주의 사자가 꿈에 요셉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애굽으로 피난 할 것을 지시하셨다.
그 후, 애굽에서 수년간을 보내게 된다. 헤롯이 죽자 귀향을 서두른다. 이때에도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돌아갈 것을 지시하셨다. 그러나 헤롯의 아들인 아켈레오가 유대의 왕이 되자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였다. 꿈으로 인도하심을 받아, 예수일행이 최종적으로 정착한 곳이 나사렛이라는 동네였다.
마태는 예수님의 피신과 귀향 그리고 정착까지의 일련의 모든 과정들이 하나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말씀에 따른 것임을 구약성경을 인용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차 독자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성취임을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오늘 말씀 속에서 요셉의 무던함에 주목하고 싶다. 자신의 아기도 아닌 예수를 지키기 위해서 피난 생활을 감당해야만 했다. 아기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그의 이러한 섬김에 대해서 칭찬 한 마디 언급도 없지만 그는 하나님의 일군으로 묵묵히 그 일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저 난 당신이 싫어! 한 마디만 했으면 이와 같은 어려운 일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약속의 성취를 위해서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였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위해 요셉과 같은 무던한 동역자가 필요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위해 나또한 요셉처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주님과 함께 순종의 길을 걸어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