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절하도록 외로움을 느끼는 고독감의 정체는....?
작성자명 [김연경]
댓글 0
날짜 2008.03.17
처절하도록 외로움을 느끼는 고독감의 정체는....?<눅>22;39~53
내가 외롭다 고독하다 하면
흔히들 세속적인 육체의 외로움이요 고독감으로 치부합니다.
그리고 홀 애비의 경력과 연륜이 그 만큼 되었으면
이제 외롭다거나 고독하다는 것을 초월 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어떤 이는 연민을 간직한 진지한 위로로
어떤 이는 빈정거림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외롭다 고독하다 말하는 것은
그런 류의 외로움이나 고독이 아니라
기도할 때부터 느끼는 외로움이요 고독감임을 먼저 밝혀둡니다.
십자가의 순종을 눈앞에 두고
습관을 좇아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듯이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느끼게 되는
처절한 외로움이요 고독감입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신 절대 고독의 경지...!!
기도할 때마다 제가 요즘 느끼고 있는 외로움이요 고독감입니다.
예수님이 느끼시는 그 처절한 절대 고독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저 역시 요즘 들어
기도할 때마다 외로움과 고독감을 많이 느끼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 기도 뿐이요
가장 확실한 일이 기도요
기도에 생명력이 있다는 것을 체험하면 할수록 기도하기가 어려워집니다.
기도의 능력과 힘을 얻게 되고
응답과 기적을 거듭하여 체험하면서부터는
더욱더 외로움과 고독감에 빠져드는 것을 느낍니다.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고
육적으로 가진 것이 없고 세상적으로 소유한 것이 없어
더더욱 절실하게 기도에 몰입하게 되고 매달리게 될 때에 더 깊은 고독에 빠집니다.
내 생각, 내 의지, 내 판단, 내 경험, 내 지식과 잔머리로
많은 일을 벌렸지만...
돌아오는 것은 실수요, 시행착오요. 또 실패했었고
그런 것들의 후유증은
새로운 올무로 나를 거듭 매이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 시간이 늘었고
힘들고 지쳐있을 때에도 많은 시간을 기도했고
확신에 찬 일로 뭔가 막 눈앞에서 전개 될 것 같은 상황이 도래한다 해도
나는
더욱더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실행하거나 움직이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무나 둔하여 꼭 실패하고 넘어져야 깨닫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겪는 연단, 어려운 환경, 환난은 모두 다
잘못 판단하고 살아온 내 삶의 결론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깨달음도 기도했기에 가능했다는 점 또한
기도의 중요성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내 주님이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올라 기도하신 것처럼
나도 습관을 좇아 성전에 나아갔고
나도 습관을 좇아 골방에 들었고
나도 습관을 좇아 무릎으로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일만이 시험에 들지 않는 길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교만과 깨달음이 둔한 나의 어리석음으로
연단의 많은 시간과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은 내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하셨는데
나는 늘 내 뜻에 맞는 내 원대로 해달라고 부르짖기도 했었음을 고백합니다.
간절히 기도 하실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고 핏방울로 변할 때까지 처절도록 갈급함의 기도를 하셨는데
나는 의식하며 외식하며 나의 열심만으로 기도했었음을 고백합니다.
의심하는 영이 나의 기도를 방해하고
참소하는 영이 나의 기도를 혼란케 해도
나는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는 본보기를 타산지석으로 알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예전에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일을 확신으로 깨닫습니다.
즉 [기도=마스터 키]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깊은 기도를 하면 할수록
깊은 외로움과 고독감을 느끼게 되고 기도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영적 외로움이요
이것을 영적 고독감이라 이름 지을 수 있을 것이며
하나님만을 소망하는 절대 고독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더욱더 이러한 기도의 깊은 경지에 빠져들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느끼게 되는 두려움을 이기기위해서는
견디는 인내가 필요한데 그 영적 무기가 바로 [기도]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이제 이 만큼 기도했으니 [응답]도 주시겠지 하는 기대도 중요하지만
더 소중한 것은 내가 믿음으로 합당한 분량에 차도록 기도하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10시간 공부하는 일보다
1시간 기도하는 것이 더 소중한 가치임을 권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응답을 위한 기도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와 그 뜻에 맞는 합당한 분량만큼의 기도를 채우는 일이
더 우선임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절대 고독의 경지에서
하나님을 바라고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며
성령의 기름 부으심과 도우심만으로 기도할 뿐입니다.=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