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4일 금요일
누가복음 13:1-9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13:1 그 때
심판을 이야기 하실 때였다.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오셨다며 구원의 긴박성을 말씀하셨다. 화해의 시급성을 권고 하실 때였다.
빌라도가 어떤 사람들을 처형한 후, 그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을 두어 사람이 예수께 아뢰었다. 기사거리로 말하면 특종인 셈이다. 이러한 극악무도한 일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적 이슈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아온 것이다. 서로 밟힐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그 현장에다 민감한 사안을 들이민 것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수많은 눈동자가 예수님의 입에 쏠려 있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주님은 원인을 규명하는 일과 사건의 개요 책임자 처벌 등을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를 말씀 하시지 않았다.
“회개하라!”
착각하지 마라.
그들의 해 받음은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아니라는 것이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졸지에 열여덟 명이 생명을 잃은 사람의 예를 드시면서 동일하게 아니라고 거듭 부정하시며 결론을 내리신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 거듭해서 회개의 시급성을 강조하시면서 비유로 말씀하셨다.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이야기로 말씀을 이어가신다.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를 당장 찍어버리려는 한 사람과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는 포도원지기의 대화이다. 이들의 대화의 행간에는 기다림이란 시간을 차용한 포도원지기의 사랑이 배어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9절
지금 내가 살아있다는 것은 돌이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란 것이다. 더 이상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예수를 믿고 있다면 죽어가는 자들을 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란 것이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라는 주님의 당부이시다.
7월에 들어서면서 세월호 구조인력을 대폭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기사를 보았다. 남은 열 한 명을 위해서 더 이상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겠다는 이야기이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남겨진 사람들을 더 한번 울리는 현실에 가슴이 아파온다.
그러나 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이 땅에 4,000만 명의 사람들이 세월호에서 구조를 바라고 있는데 외면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이다. 우리 교회의 이야기이다.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나만 살았다고 안주하며 내 교회를 위하여 열심을 다해서 건물을 키워가고 세습하고 있는 이 땅의 교회를 향하여 가슴을 치시는 주님의 눈물을 본다.
제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해경들을 향하여 질타의 목소리를 날리면서도 오늘 죽어가고 있는 발에 밟힐 정도로 수많은 세월호 사람들을 보면서도 “위험하니 있는 그 자리에 있으라.”며 헛구호만 외치고 있지는 않은 지 돌아본다.
세월호 단원고 학생들의 부르짖는 목소리를 듣는다. 우리의 죽음을 한국교회가 헛되게 하지말아 달라며 회개하라 부르짖는 저들의 피맺힌 절규를 듣는다.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고린도후서 6장 2절
주님의 말씀 속에 사도바울의 외침이 메아리처럼 울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