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2일 수요일
마태복음 1:7-17
“족보, 사랑의 대서사시”
이스라엘인에게 있어서 족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오늘 첫 번 째로 등장하는 아브라함은 그들의 시작이자 뿌리였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길을 평탄케 하며 책망하실 때, 마태복음 3:9절에서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이스라엘인의 의식 속에 박혀있는 이름이 아브라함이었다.
그런 그의 아들 이삭, 그리고 그의 손자 야곱을 통해서 12지파가 탄생한다. 요셉을 통해서 이주하여 살게 된 430년 동안의 애굽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홍해를 건넜다. 모세와 함께 광야에서 40년간의 생활을 통해 애굽에서의 누추한 삶을 버렸다. 여호수아와 함께 조상에게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다. 열두 지파대로 땅을 구분하여 나누었다. 그리고 그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느슨한 연방제였던 셈이다. 나라가 위급해지면 모든 지파가 하나가 되어 싸우는 단일국가이지만 평상시에는 지파의 족장들에 의해 자치적으로 통치되었던 씨족사회였다.
오늘 그들의 족보는 단순히 조상의 이름을 거론하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다. 잃어버린 과거를 찾는 작업이다. 잊혀 진 역사를 되짚어보고 영광과 실패를 동시에 돌아보는 이야기이다.
조상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거론될 때마다 그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죄를 보게 되고 하나님의 끊임없는 용서와 다시 일으키시는 사랑의 대서사시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의 이름 속에서 그들만의 찬란한 문화와 강성한 나라에 대한 진한 향수를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 포로 되었던 아픔의 역사를 뒤로한 채 400년간 암흑과도 같은 말씀의 침묵기가 계속되었다.
긴 절망을 깨시고 드디어 말씀이 시작되었는데 그들의 민낯과도 같은 족보가 등장한 것이다. 족보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는 눈물과 환희와 절망을 본다. 이것은 한 나라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나의 삶 가운데 동일하게 흐르는 절망의 강이다.
마태가 족보를 기록하면서 많이 망설였을 것이다. 잊어버리고 싶은 실패의 대목에서 그는 한참을 서성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용기 있게 붓을 들어 기록한다.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는 것이다. 히스기야 왕에게서 므낫세와 같은 악한 왕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고백하고 있다. 요시야 왕이 성전수리 중에 발견된 두루마기 성경을 보고서 개혁자로서 열심을 다했지만 전쟁에서 전사하는 아픔을 고스란히 적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를 통해 소개된 족보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토록 원해서 세웠던 왕으로는 자신들을 구원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참회록이다.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 되심을 선포하고 있다. 새 시대를 여는 복음의 현장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