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1일 화요일
마태복음 1:1-6
“시작“
마태복음을 시작하면서 처음 편지를 받아본 독자들의 입장을 생각해보았다.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향한 편지이다. 그것을 전제로 본다면 오늘 1: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란 말 앞에서 그들은 자부심과 함께 하나님의 백성임을 새롭게 자각하였을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부를 때, 세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
그들은 새로운 약속의 첫 장을 떼면서 아브라함과 존경해마지않는 다윗의 이름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에 고무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를 읽어 나가면서 그 적나라함에 깜짝 놀라게 되었을 것이다. 족보 속에 감추고 싶은 특별한 이름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유다는 ‘다말’에게서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유다는 며느리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출신은 이방인이요, 그의 신분은 기생이었다.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룻은 과부가 된 후,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온 이방인이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이 대목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고개를 숙인다. 숨을 한 번 크게 내뱉는다. ‘다윗은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고’가 맞는 말인데, ‘우리야의 아내에게서’라는 告解(고해)와도 같은 신음소리를 듣는다. 마태는 비켜갈 수 없는 죄의 엄중함을 기록한다.
그들이 그렇게도 자랑스러워했던 족보에 담긴 근친상간, 그리고 간통, 이방인 등 당시 유대인들이 입에 담기조차 싫은 단어들이 적나라하게 기록되어있다. 어쩌면 죄의 박람회를 보는듯하다. 왜 마태는 이처럼 족보의 민낯을 공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사람은 죄인이라는 선언문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그토록 존경해마지않는 조상들 역시 예수님이 필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너희들이 착각해왔던 혈통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시다. 너희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구원이다. 그래서 내가 아들을 보내야만 한다는 역설을 토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의 족보 속에 나의 이름을 넣는다. 나도 죄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나의 구주가 되셔야만 하셨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여인의 자궁까지 낮아지신 주님을 찬양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