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30일 월요일
누가복음 12:13-21
“채움과 비움 그리고 나눔”
주님은 앞으로 다가올 환란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제자들이 만나게 될 어려움에 대해서 그 대처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너희를 해하려 하는 위정자들 앞에서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고 하셨다. 환란 이후, 죽음너머를 말씀하고 계셨다. 영원한 삶과 죽음에 대해서 가르치셨다.
그런데 오늘 유산 상속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형으로부터 재산을 찾게 해달라며 주님께 찾아왔다. 그의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신다. 그리고 말씀을 이어가셨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한 마디로 정리하신다.
주님께서는 앞으로 닥칠 어려움과 진정한 갈등을 말씀하셨는데 한편에서는 재산분배로 인한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동문서답처럼 주님의 생각과는 달리 대중의 눈높이는 내일을 보지 못하고 오늘에만 머무는 영적근시안의 모습이다. 주님은 비움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인생들은 채움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비유로 가르치신다.
한 부자가 밭의 소출이 풍성하였다. 그의 고민은 현재 소유한 창고로는 저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짧은 두 절 속에 다섯 번이나 반복되는 단어가 ‘나’라는 주어이다. 그의 삶 속에는 이웃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더 나아가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배부른 고민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멸망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어리석은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도의 삶은 오늘에만 집중될 수 없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허비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삶은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을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법이 없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나의 머리털 개수를 알고 계신다. 더 나아가 지금까지 빠진 머리털 수를 계수하고 계신다. 내가 고민해야할 것은 이 놀라우신 하나님을 시인하며 사느냐에 있다. 채움이 아니라 비움을 그리고 더 나아가 나눔을 고민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이처럼 나를 향한 지대한 관심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랑이다. 이 사랑을 이웃에게 나눔으로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