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joyful sound (기쁨의 소리) -
오늘의 본문은 느헤미야 12장 27절-47절 말씀입니다.
성벽이 봉헌됩니다. 모든 레위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이 다 불러 모아집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과 백성들과 성벽 모두를 정결하게 합니다.
느헤미야는 찬송하는 자의 큰 무리를 두 무리로 나누어서 각기 성벽의 반대 방향으로
지도자가 인솔하여 가도록 합니다,
그들이 다시 만나서 성전으로 향합니다. 기쁨의 소리가 멀리까지 울려 퍼집니다.
십일조와 첫 열매를 위한 곳간을 지킬 사람들이 정해지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사람들과 제사장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문지기들을 위해서 그 날의 정해진
몫을 드렸습니다.
나는 주님에 관해서 이야기 할 때 기뻐하는가? 나의 죄를 이야기할 때 내가 잘못 행한
슬픈 이야기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뻐할 수 없음을 압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명을 주신 죽음’을 이야기할 때는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 안에서 살아가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 할 때는 또 얼마나 흥분되는지
모릅니다.
어제 학교의 행정직원들과 도서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큐티인을 드리러 학교에 갔었습니다.
이 일은 정말 즐거운 일입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 영어로 된 큐티인이 나오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 안에서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게 될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웃으며 말할 수 있었습니다.
2 주 만에 다시 만난 우리들은 반가움에 얼굴의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오늘의 본문에서 했던 것과 같이 우리는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또한 공통의
목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는 것은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저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은 그 자체의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알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저를 이 학교의 교장으로 보내셔서 훈련받게
하셨으며 하나님 안에서의 삶의 기쁨을 공유토록 하셨습니다.
이전에 저는 그 기쁨을 전하지 못했었습니다.
이와는 다르게 저는 캐나다에 있는 제 친구에게는 하나님의 기쁨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습니다.
처음으로 그는 자신이 무신론자였음을 말했고 저는 모든 사람은 무언가를 숭배하고자
하며 그래서 어떤 종류의 신을 만들어내게 되는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예수님을 경배하는 것은 그가 나의 천국 구원을 약속하셨기 때문임도 말해 주었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여전히 마음을 바꿀 시간이 있기 때문에 저는 그를 천국에서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니 기쁨이 샘솟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우리들교회의 찬양팀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크고 기쁨이 넘치는 소리를 들려줍니다.
그래서 저는 주일 예배보다 찬양이 많은 수요예배를 특별히 좋아합니다.
그 시간의 휘문 채플은 찬송의 노래 소리로 진동하며, 그 찬송의 기쁨으로 어느 누구도 슬픔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지붕을 열어젖히고 이 기쁜 찬양의 소리를 멀리서도 들을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캐나다를 여행하는 동안 저의 누이로부터 기쁜 소식 하나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에 대한 긴 나눔을 했었는데 그 이후에 그녀가 교회에 다시 나가기
시작하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녀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너무나 중요한 교회에 나가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의 예배를 회복시켜 주셔서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