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8일 토요일
누가복음 12:1-12
“내가 내 친구에게”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자신들을 비난하는 예수를 책잡고자 노리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서로 밟힐 만큼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께로 몰려들었다. 예수를 추종하는 무리와 배척하는 무리로 나누어진 그야말로 양극화가 심화된 때였다.
그때 군중들에 앞서 제자들에게 먼저 말씀을 건네신다. 제자들을 향하여, 4절에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라고 부르신다. 이것은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는 말씀이 아니다. 친구에게 부탁하는 친밀한 모습이다.
누가복음 9:51절에서 “예수께서 승천할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주님께서 공생애를 마치시기 얼마 전이었다. 자신을 삼년 동안 따라 다녔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랑의 메시지였다. 논공행상에 빠져있던 철딱서니 없는 제자들을 향한 간곡한 부탁이었다.
드디어 세상의 종말과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바리새인의 외식을 주의하라는 것이다. 그 때에는 모든 것이 샅샅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심판에 앞서 환란이 있을 것이다. 너희가 나를 부인할 만한 상황이 닥칠 것이라는 것이다. 바로 그때가 양과 염소가 나누어지는 때이다. 알곡과 가라지가 분별되는 때라는 것이다. 지금은 발에 밟힐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추종하지만 환란이 올 때에는 나를 버릴 자들이 있다는 경고의 말씀이시다. 그 나누어지는 경계는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是認할 것인가? 아니면 否認 할 것인가?’로 결정된다.
하나님께서는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조차도 기억하고 계신다고 하셨다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 내 친구인 너희들의 모든 것을 아신다는 말씀이시다.
나의 필요를 아신다. 나의 아픔을 아신다. 나의 고민을 알고 계신다. 나의 슬픔을 알고 계신다. 나는 내 머리털의 개수를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계신다. 친구인 나를 만나고 싶어서, ‘절친’인 나를 돕기 위해서 보고 계신다는 말씀이시다.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요한복음 15:15절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 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33절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며 세상을 이기신 주님을 시인하며 걸어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