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6/27(금) 거룩한 지도자와공동체 느헤미야 12:1-26
느헤미야 12:1a 스알디엘의아들 스룹바벨과예수아와함께 돌아온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이러하니라
홀아비가 망친 외동딸
유다의 마지막 왕 여호야긴(여고냐)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후, 그의 아들 스알디엘이 자식이 없이죽어 동생 브다야가 형수와 계대혼인하여 얻은 아들 스룹바벨의뜻은 ‘바벨론에서 낳았다’입니다. 비록 예수님의 조상이기는 하지만 바벨론에서 출생한 첫 후손이란 뜻이라 미루어 짐작할수 있습니다. 바벨론 태생이어서 이스라엘 왕국의 영광이나 성도 예루살렘에 대해 전혀 본적이 없을 터인데도 유다 지방의 총독으로 제사장 예수아와 함께 돌아온 이유는, 왕족으로서 부모로부터하나님 여호와와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교육을 철저히 받아 영적 정체성이 분명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이런추론을 하게 되니 제 외동딸에 대한 회한과 후회의 감정이 들며, 왜 불신결혼을 하면 절대로 안 된다고하는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저는 아홉 살이나 어린 전처와 사내연애 끝에 혼전임신으로 결혼했지만, 그 당시 반드시 신앙 안에서 가정을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성당에서영세를 시키고 결혼하여 이내 외동딸을 얻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신자였기에 전처의 영세명은 비비안나이고, 외동딸은 소피아이고, 저는 바오로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영세만 받았지 제대로 된 신앙이 없었기에 하나님 안에서 화합하지 못하고, 심한 나이 차이로 인한 가치관과 생활 습관의 차이로 계속 불편하고 힘든 관계로 지내다가, 사업 실패로 결정적으로 별거가 시작되었고, 결국 결혼 8년 만에 합의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신결혼 하지 못해 치러야 했던혹독한 대가였고, 신앙 없는 제가 겪어야 할 당연한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닫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 이후 저와 외동딸과둘이 사는 과정에서 발생했습니다. 처음에는 주일마다 어린 딸과 성당에 다니며 그럭저럭 지내다가, 딸이 사춘기에 접어 들자 알코올 중독과 음란한 생활에 젖어 들어 주일마저 지키지 않는 냉담자가 되어버렸고, 딸을 교회에 데려가야 한다고 생각만 하지 실천하지 못하는 게으른 홀아비였기에 예민한 딸은 딸대로 저는 저대로각각 사는 따로국밥 집안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가뜩이나 이기적인 저에게 전처에 대한 미움과 원망이 딸에게투사되었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사랑과 신앙이 없었기에 서로 다투고 미워하며 긴 시간 지옥을 살았습니다. 급기야대화가 완전히 단절되고 아비를 아비라 부르지 않는 끔찍한 상태로 지내다가, ‘우리들교회’로 돌아와 양육과 삼 년이 넘는 적용 끝에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관계로 회복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모두가 전적인 하나님 은혜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 볼수록 이 모든 일이 저의 죄와그릇된 선택으로 일어난 일이기에 모든 것을 떠안고 갈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아직 하나님을 인격적으로만나지 못한 외동딸은 교회에 오는 것을 불편해하고 하나님께서 진짜 살아 계신지 저를 살피고 있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제가 외동딸의 영혼 구원을 위해 울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신 약속이 있기에 오늘도 묵묵히딸을 기다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부디 바라기는 이 연단의 시간을 잘 인내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할뿐입니다. 하나님,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와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서 촬영했습니다. 삶을 상징하는 풀잎과 죽음을 상징하는 묘비를 함께 촬영했습니다. 삶이 있는 곳에는 죽음이, 죽음이 있는 곳에는 삶이 항상 함께 한다는 사실이 하나님께서 저희에게 알려주시려는 신비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