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5일 수요일
누가복음 11:14-23
“모으는 자, 헤치는 자”
주님께서 귀신을 쫓아 내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놀랐다. 자신들의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면서 예수님의 능력의 근원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이라는 사람들, 또 다른 이적을 요구하면서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셨다고 했다. 그들의 수군거림에 대해서 한마디로 말씀하신다. 하나님 나라는 싸우는 나라가 아니다. 세우는 나라이다.
기쁨의 순간이었다. 말 못하는 인생이 말 하는 인생으로 회복되는 행복한 자리였다. 누가보아도 축하해야할 치유사역이었다. 하지만 의심의 눈은 이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기를 거절하게 한다. 병든 자가 일어나고 청각장애인이 말을 하게 되는 회복의 역사 앞에서 삐뚤어진 시각을 가지면, 이처럼 왜곡하고 반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조차 하다.
부정이라는 검은 안경을 벗기 전 까지는 볼 수 없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과 배운 모든 것을 내려놓기 전까지는 주님을 만날 수가 없다.
교회를 향하여 개독교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자신을 향하여 크게 피해를 주지 않았음에도 이처럼 막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 나름대로 교회에 대한 일정한 기대치를 갖고 있는데, 그것에 못 미치는 것에 대한 반작용일 것이다. 오히려 교회를 향하여 돌을 든 자들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긍정적이다. 광야의 외치는 목소리로 들을 수만 있다면 교회와 이 땅에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연약한 교회를 향하여 욕하고 반대하는 그들을 품고 눈물로 기도하는 많은 성도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00년 전 놀라운 능력을 베푸시는 주님을 반대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를 향하여 질타하는 목소리는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혹시, 내 자신도 모르게 돌든 자들 편에서 그들과 함께 편승해서 교회를 향하여 돌을 던지고 있지는 않은 지 살펴볼 일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신앙의 회색지대는 없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모으지 아니하는 자 역시 나를 반대하는 자라는 말씀이시다. 이 말씀의 엄중함을 돌아본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일하지 않는 자도 주님을 반대하는 자라는 것이다. 전도의 중요성을 말씀하신다. 해야 할일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주님을 반대하는 것임을 천명하신다. 나는 오늘 모으는 자로 설 것인가? 아니면 헤치는 자로 설 것인가? 분명한 태도로 주님께 나아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