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4일 화요일
누가복음 11:1-13
“이렇게 기도하라”
주님께서는 오늘도 기도하셨다. 주님의 사역 뒤에 빠질 수 없는 사역 중 하나가 기도하는 일이셨다. 늘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제자들도 기도에 대한 갈증이 일어났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려움 중의 하나가 기도에 대한 것이다. 특히 대중기도는 자신의 신앙이 바로미터처럼 드러나는 일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많은 성도들이 기도에 대한 기피증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흔히들 알고 있는 기도의 정의는 무엇인가? 아마도 많은 수의 성도들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으로 대부분 이해하고 있다.
오늘 주님께서 한 곳에서 기도를 마치시자, 제자 중 한 사람이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청한다. 주님께서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이다.
우리가 기도를 시작할 때, 나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을 주목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분과의 관계가 정립 될 때,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나를 만드신 분이시다. 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당연히 거룩히 여김을 받으셔야만 하는 분이시다. 그 분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거룩한 의무이다. 내가 누구인지를 하나님의 이름 앞에서 알게 될 때, 나의 필요를 기도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아는 것이 ‘기도의 출발’이다.
오늘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주목해야할 단어가 ‘우리’라는 말이다. 공동체 즉, 교회를 향하여 주신 말씀이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내 밥그릇만 챙기지 말라는 것이다. 형제의 아픔과 배고픔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명령이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생존에 절대 필요한 양식이 우리들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쌀 한 톨에도 주님의 호흡이 머물고 밤새 내린 이슬을 먹고 자라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먹는 밥 한 그릇에 담긴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억하라는 말씀이시다. 그곳에 감사가 있다면 나는 오늘 믿음에 성공한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역에서 베풀고 계신 은혜를 목격한 자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이틀분의 양식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 가르치신다. 이 말씀 속에는 나와 매일 아니 매 순간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긴 사랑이다. 날마다 자식들의 밥을 지어주시겠다는 엄마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두 번째로 우리에게 죄지은 자에 대한 용서를 요구하신다. 이웃과의 관계를 제대로 한 후, 기도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신데 이 문제가 내게 있어서는 가장 어려운 숙제이다.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그래야만 우리의 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씀을 뒤집어보면 네가 용서해야할 그를 위해서도 내가 십자가를 졌다. 그리고 그의 죄를 용서했는데 네가 용서해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이런 말씀일 것이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말게 해달라는 기도는 이 땅은 시험거리로 꽉 차있는 세상임을 전제로 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쉬지 않고 해야 하는 영적 호흡임을 가르치신다.
구할 때, 구해질 때까지 구하라. 찾을 때, 찾을 때까지 찾으라. 두드릴 때, 열릴 때까지 두드리라는 말씀을 통해서 기도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계속 기도하는 것, 기도의 지속성을 가르치신다.
그리고 기도의 ‘최종 종착지’는 성령이시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되시기 위해 모든 믿는 자들의 심령 가운데 성령께서 내주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자신 전부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나와 함께 사시기를 원하신다. 이 놀라운 사랑에 감격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