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금요일부터 토요일 오전까지 남자 직원들과 주천에 있는 엄둔 계곡에 1박 2일로 다녀왔습니다.
일상의 바쁜 틀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허물없이 서로 간의 이야기들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계곡을 산책하는데 숲이 울창하여 밀림을 보고 있는 것 같았으며 고라니도 보이고 다람쥐도 보이고 자연이 잘 보조되었음에 감사를 느꼈습니다.
이제는 경제적으로 잘 안되겠지만 그레도 수종을 개발하여 산림자원을 육성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먼저 출발한 조가 가서 투망으로 물고기들을 많이 잡아서 튀김을 해 놓았고 돼지고기를 구어서 먹으니 그 순간만큼은 참으로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토요일 날 올라오기 전에 개울가에서 낚시를 던져보았지만 고기가 한 마리도 물지 않아서 아쉽지만 돌아왔습니다.
고기를 잡을 때면 꼭 사람을 낚는 어부를 생각하게 되는 데 나는 사람을 잘 낚는 어부가 되기 위해서는 준비가 많이 필요함을 항상 느낍니다.
자연 속에서 서로를 위하여 취사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다 보니 동료 직원들이 같은 형제애를 느끼게 해 주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찌라도 무슨 말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로마서9:21#12316;23)
토기장이가 같은 흙으로 귀하게 쓰일 그릇과 천하게 쓰일 그릇을 만들 권리가 없습니까?
창조주에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어떤 것에 대한 안다는 것도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겸손해야 함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인간은 피조물이며 그에게 재능과 지혜를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노여우심을 보이고 자기 능력을 알게 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멸망받기로 되어있는 사람들을 벌하시지 않고 너그럽게 참아주셨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셔서 영광을 받도록 미리 준비하신 사람들에게 그분의 풍성한 영광을 알리시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내가 그 부르심의 초청에 응답하는 사람으로 살으렵니다.
세월호 침몰사건으로 구원파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이번 기회에 조금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 같아서는 빨리 빨리 잡아서 죄의 대가를 주어야겠지만 참으로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도피할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히 나서서 빨리 자신들이 행한 죄의 대가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긍휼이 여기시어 여기까지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부족한 나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날마다 감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32#12316;33)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살지 않고 행위로 살려는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에 내가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과 바위를 시온에 둔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쓰인 말씀과 같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죄를 위하여 흘리신 보혈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 끝날 까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지혜와 능력을 부어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고 있음이 너무나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같은 연약한 자도 택하시어 하나님을 그 싶은 사랑을 알도록 하시며 부끄러움을 당치 않게 하시며 무엇 보다 더 반석의 믿음을 주심을 감사하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