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3일 월요일
누가복음 10:38-42
“깍뚜기”
누가는 오늘 그냥 지나쳐도 될 법한 사건을 깍두기처럼 에피소드 하나를 삽입시킨다. 어제 본문에서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가를 말씀하셨다. 그는 선한 사마리아인이었다. 모두가 버리고 간 강도만난 어떤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는 사마리아인을 통해서, 하나님 당신의 사랑을 보여주신다.
누가는 오늘 편지를 쓴다.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서이다. 그가 바로 데오빌로 각하이다. 속편에 해당하는 사도행전도 똑같은 이유로 기록하였다. 누가의 이러한 열심은 바로 하나님의 열심을 닮았다. 이 땅에 구원 받을 자가 단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님은 똑같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실 것이라는 어떤 분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 이런 사랑 또 어디 있나요? 하나님의 짝사랑이시다.
오늘 선한 사마리아인이신 예수님께서 한 집을 방문하셨다. 예루살렘을 방문하실 때면 으레 들리신 복음의 베이스캠프였던 베다니 마르다의 집이었다. 여동생 마리아와 함께 남동생인 나사로가 함께 기거하고 있는 집이었다. 언니인 마르다는 분주해졌다. 예수님과 그 일행을 위한 저녁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이다. 그때 야속하게도 예수님의 말씀에만 빠져있는 마르다가 원망스러워졌다. 그런 동생을 자신을 돕도록 내보내지 않으신 예수님께도 불만이 생겼다. 급기야는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40절
마르다는 자신의 동생을 불러서 따끔하게 야단을 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한 발 더 나아가 예수님을 향하여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예수님을 주여! 라고 부르면서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주님을 가르치려하고 있는 것이다. 분주함이 마리아를 향한 불평이 주님을 향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 하셨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마르다야 마르다야 두 번 씩이나 부르셨다. 그것은 간절한 주님의 부르심이었다. 준비하는 일에 마음이 분주한 마르다를 부르셨다. 일에 앞서 마음이 무너진 여인을 향한 주님의 음성이었다. 그것은 책망이 아니었다. 사랑으로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의 부르심이었다.
이처럼 분주함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멀어지게 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이신 주님께서는 먹을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가르치고 계신다. 그것은 참된 양식인 자신을 주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이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렇다 말씀이신 자신을 주려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세상은 분주하고 그것이 살길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빨리 더 빨리를 외치며 바쁘게 사는 것이 옳은 길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오늘 말씀 하신다. 일과 말씀이라는 두 가지 길을 보여주신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 분명한 목소리로 또 한 번 말씀하고 계신다. 분주함이라는 강도에게 빼앗기고 상처 난 여인 마르다를 싸매시고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월드컵이라는 강도에게 빼앗긴 마음을 오늘 주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셔서 치료하기기를 원하고 계신다. 분주함이라는 또 다른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우선순위가 말씀 묵상임을 되새기면서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