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적용하며 구원을 위한 본이 되는 삶을 살게해달라는 기도를
잘합니다.
그런데 생활에서는 마음도 몸도 따라가지못할 때가 많아 탄식하게 되지만,
그래도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서 더 주의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는 것이 은혜입니다.
저는 옷은 아무것이나 입어도 마음에 부담이 없지만, 신발 만큼은 모양을
떠나, 싸거나 비싸거나 발이 편해야 마음이 안정됩니다.
오랜만에 편한 신발이라고 기억이 좋았던 백화점 매장에 들러 로퍼스타일
구두하나를 골랐습니다.
판매직원이 원하는 사이즈를 찾으러 창고에 가있는 동안 기다렸다가 결제를
하고 이미 포장해 놓은 물건을 확인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물건은 진열되어 있던 그 구두였고 신었던 흔적들이 뚜렷한데
아무말 없이 방금 전 창고에서 꺼내온 새 물건처럼 포장해 놓은 것이 참으로
불쾌했습니다.
백화점 매장에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라 당황스럽고, 순간 기분이나빠
‘뭐하는 거냐고.. 이래도 되는 거냐고... 무시하는 거냐고..’ 화를 냈습니다.
‘사이즈가 없으면 없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양해를 구해서 손님에게 선택을
맡겨야지..어떻게 이사람 저사람 신었던 진열상품을 포장해서 내미냐고..#039
훈계하며 결제를 취소하고왔는데도 자꾸 그 생각이 나면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날 내 옷차림이 그 구두를 사기에는 못 미치고 그렇게 해도 괜찮을 사람으로 보였나?..’
‘집에 있는 좀 더 비싼 구두를 신고 갈걸 그랬나?...’
‘그 직원이 그 구두를 그렇게라도 팔아 매상을 올려야 했을 사정이 있었나...’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직도 처리되지 않은 이 불편한 감정은 뭘까...
평소에 남편과 자녀들에게 무시 받아 억눌린 감정인데 고객을 왕처럼
떠받들어야 하는 그곳에서 조차 무시 받았다는 피해의식으로 힘들었습니다.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며 분노한 감정 없이 이성적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는
없었을까... 그 직원이 우리들교회에 와서 나를 본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만약우리 교인 이라도 내가 그랬을까...
한 가지 일을 겪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해 본성에 거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 비천하며
힘 없고 무시를 받는 자들이었습니다.
아직도 무시를받지 못하며 감정이 앞서고, 그래서 성도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아마 그때바벨론에 거했다면 약속에 땅일지라도 불편하고 무시받기 싫어
절대 안돌아 왔을 인간이 바로 저입니다.
조금이라도 살만했다면 그곳에 안주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지금도 남편과 아이들이 안 밟아 주면 공동체를 중요하지 않게 여길 것입니다.
천국에 갈 때 까지 갈등하며 변하지 않는 제 자신 때문에 힘든 일이 많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본성에 거하길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140년 동안 방치했던 성벽보수가 52일 만에 완성된 것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체험했던 백성들이 스스로 말씀을 사모해서 힘든 중에도 모였습니다.
저도 변하지 않는 제 삶에 소망을 주신 주님이 감사해서
구원의 능력 있는 삶이 되길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며 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