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7:39
오랜 포로생활을 끝내고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가라고 하는 바사 왕의 명령이
떨어졌을 때 가장 기뻐해야만 하는 유대인들은 정작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선택된 지파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더더욱 그랬습니다.
본문에 길게 나열된 제사장과 레위인, 그리고 그 나머지 백성들의 이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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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중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이름과 숫자는 그중에 가장 적습니다.
제1차에 귀환한 숫자가 42,360명인데 제사장은 네 가문에 4,289명,
레위인은 세 가문에 74명만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전체로 따지면 겨우 십 분의 일 정도만 돌아온 것입니다.
저들은 타국에서 이방인으로 살고 있는데 그런 포로생활에서 아쉬움이
전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직분이 뭐가 중요하냐고 하면서도 중직에 있으면
웬만해선 교회를 떠나가지 않습니다. 반대로 직분이 없으면 교통문제 같은
방해만 있어도 가까운 교회로 옮기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이 부분 때문에 집사 직분이 남발하기도 하지만 하다못해 조폭들마저도
나와바리에서 2등은 그 지역을 떠나는 것이 그쪽 세계의 룰이 아닙니까,
레위지파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어서 풀타임 사역자들입니다.
모르긴 해도 바벨론 포로를 떠날 때 평신도보다 더 많이 울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타국 생활하면서 이제 고국을 잊고 살만큼 살만한 모양입니다.
고국에 대한 향수를 유행가로 달래더라도 일궈놓은 기득권을 버리기 싫었을지
모릅니다. 저는 본적을 20년 전에 서울로 바꿨지만 제 말투에서 제가 W백
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압니다.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동창회,
기수모임 등등 별별 건수를 다 만들어서 걸핏하면 광주로 내려갔었는데
언제부턴가 딱히 이유도 없이 고향에 내려가지 않습니다.
만약에 고향에서 내게 새로운 터전을 준다고 해도 선뜻 응할 생각이 없습니다.
제가 서울 생활 30년을 하다 보니까 저도 모르는 사이에 서울 생활에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가끔 고향의 친구들이 올라와 교통 때문에 서울서는 못살겠다고 할 때
마다 속으로 저는 그래도 서울이 제일 살기 좋은 곳이라고 중얼거린답니다.
임기웅변은 세상의 지혜이고 성도는 하나님의 때에 맞춰 사는 나그네 인생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거룩”인 것을 잊기 때문에 자꾸만 행복의 유혹이 등장을 하는 겁니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더 쉽게 갈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소리에 귀가 열립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된다고 하는 많은 방법론들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에 그런 방법론들이 마치 정론인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거룩으로의 삶은, 살아가는 어떤 기술을 연마하거나 방법과 도구와 수단을 잘
이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하루 차곡차곡 성실하게 쌓아가야만 하는 인격의
완성이고 실제입니다. 때문에 삶의 모든 과정이 다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할 수
없는 훈련이고, 연습이고, 준비입니다.
성도라면 그런 과정과 절차를 다 뛰어넘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들의 대장이신 예수님께서도 사람 사는 모든 과정을 다 겪으셨습니다.
그냥 건너뛴 것이 없으십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꾸만 건너뛰려고 합니다.
쉽게만 살려고 합니다. 겪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쉽게만 사는 것이 마치 큰 복인 것처럼,
또는 은혜인 것처럼 착각하고 호도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은혜로 남들보다 더 쉽게, 더 빠르게 잘 되었다고 하는
웃기지도 않는 자랑들이 넘쳐 나고 있습니다. 그것도 교회 안에서.
하지만 그런 배경 뒤에는 나 아닌 다른 이들의 아픔과 고통과 서러움이 기반이
되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습니다. 남의 희생을 등에 업고 내 복을 누린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사이비은혜가 지금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습니다.
우리 목사님의 어록대로 기독교는 고난의 종교입니다. 어려움의 종교이지요.
동시에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기쁨을 누리는 종교입니다.
때문에 기독교는 역설적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는 충분히 정신이
나간 짓입니다. 얼이 빠진 일입니다. 미쳐도 단단히 미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얻는 기쁨이 있습니다. 아니 얻는 기쁨이 아닙니다.
누리는 기쁨입니다. 환경과 형편과 처지가 주는 기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것은 세상의 고난이요, 핍박이요, 아픔입니다.
그래도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고 싶은가?
돌아오기 힘든 사람들(39-45)
돌아오는 사람들(46-60)
진짜 돌아오기 힘든 사람들(47-65)
가정과 공동체에서 제사장 직분을 맡겨주셨는데 욕심 때문에 사명 따라 살지 못했습니다.
나를 고센이나 느디님으로 두신 것은 소유에 약한 내게 본향을 기억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임을 깨달았사오니 명품, 학위, 돈 밝히는 우상을 버리고 주 만 따르는
착한 신부가 되게 하옵소서.
2014.6.20.fri.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