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9일 목요일
누가복음 9:57-62
“나를 따르려거든”
‘길 가실 때에’ 57절
주님께서 굳게 결심하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골고다를 향하여 죽기위해 걸어가실 때였다. 어떤 사람이 등장한다.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겠습니다.” 그의 고백은 단호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서 걸어가고 계신 최종 목적지가 십자가의 죽음인줄 알지 못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나의 가는 길을 네가 알고 있느냐?’ 반문하시는 말씀이셨다.
이미 주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3절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고 명령하신다.
그러나 그는 방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기별을 받는 사람이었다.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그의 요청은 지극히 상식적이었다. 그러나 주님은 상식을 초월한 말씀을 하신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
하나님 나라는 ‘산 자의 나라’라는 말씀이다. 인륜보다 더 중요한 천륜을 가르치신다. 진정한 죽음은 아직도 예수를 모르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생의 두 가지 길을 본다.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다. 모든 인생들은 갈림길에 서있다.
이것은 심각한 선택의 문제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絶體絶命(절체절명) 의 문제이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누어지는 심판의 문제이다. ‘롯의 처를 기억하라’는 말씀이다.
구원의 긴박성과 구원의 시급성 구원의 중요성을 동시다발적으로 보여주시는 주님의 의도적인 부르심이다.
벳새대 광야에서 빵을 먹고 배부른 자들을 향하여 또 제자들에게 주님께서 이미 말씀하셨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오늘 자기 부인의 세 가지 유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셨다.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요청하신다. 나는 죽고 예수가 사는 나라,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라고 명령하신다.
지난 2개월 동안 세월호 침몰로 인해 수많은 국민들이 슬퍼하며 애도의 물결을 이루었다. 어제는 수많은 군중들이 영동대로와 광화문 광장에 모였다. 월드컵을 응원하는 자발적인 모임이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보다 더 심각한 죽음의 행렬이 쓰나미처럼 휩쓸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모른 척 외면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다.
교회가 위기라는 말을 하면서 성도들이 줄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교회 개척은 정말 힘든 시대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이다. 그러나 많게 잡아서 30%가 교인이라고 하더라도 70%가 죽음의 길로 치닫고 있다는 사실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 명으로 잡는다면 3,500만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으로 다가와야 한다. 월드컵보다 더 중요한 십자가의 도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교회 개척이 어렵다며 속삭이는 사탄의 궤계를 허무는 그리스도인들의 자성과 기도가 필요한 시대이다. 교회여 깨어나라! 성도여 일어나라!
행복시작 예수 그리스도를 외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