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6:15-7:4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믿는 우리 안에서 더 큰 음모가 일어나고
산발랏과 도비야의 마음과 같은 것이
내 속에 있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제 오늘은 ‘두려움’에 대해서 묵상이 되었습니다.
영어성경을 보니 두려움이 afraid, fear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9월의 시험을 앞두고 두려움이 있습니다.
개인분석(70회)과 슈퍼비젼(33회)의 횟수를 다 마쳐야 함에도
굳이 중단한 것은 세상적으로 더 쎈 세력,
어쩌면 산발랏과 도비야의 음모같은 것이 느껴져서입니다.
그동안 해 놓은 것이 좀 있기에 시험결과 후에 해도 되기도 하지만
제가 그 분들의 박식한 분석에 자꾸 타협하고 싶어서입니다.
아니, 그분들이 도비야 산발랏이 아니고
늘 음모를 꾸미는 것은 내 속의 나입니다.
오늘 성벽역사가 마치는 날,
빵빠레라도 울려야 하는데,
새벽에 큐티하며 하나님께 죄송하고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을 보고, 환경과 행동은 바뀌지 않았으나
말씀을 깨닫고 마음은 좀 바뀌고 있는데,
문을 닫기는 하였으나 빗장은 지르지 않은 것을 느낍니다.
영적인 성벽도 세우다가 무너지고
육적인 것은 더 그렇습니다.
별거한지 14년,
그 전에도 길게 해외출장으로 같이 살지 않았으니
다 훼파된 가정입니다.
이제 가옥을 건축해야 하는데
두려움이 앞섭니다.
가정중수도 못한 채,
목장에서는 남편에게 이렇게 저렇게 잘해야 한다고 처방을 합니다.
남의 것은 잘 보이고,
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제 6월은 다 갔고, 두 달 남았는데, 급한 마음 버리고
문 빗장을 지르지 못한 것을 자꾸 묵상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겠습니다.
두려움이 fear 속에 있는 ‘경외’라는 뜻으로 바뀌길,
안된 제 모습을 보며 오늘도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이 자리에서 아들 딸 밥 차려주고, 무섭다고 밖에 나가 공부하지 않고
집에서 하겠습니다.
쓰고 녹음해서 듣고 다니고 해도 외워지지 않아
두려운 마음이 들 때마다
지금은 할 게 이것밖에 없어서 죄송한 마음으로 하겠습니다.
예배를 기쁨으로 드리고 있다는 것이 큰 위안입니다.
오늘 수요예배가 또 낙담해 있는 저를 살려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