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17일 화요일
누가복음 9:46-50
“누가 크냐?”
예수님은 당신의 죽음을 말씀하고 계셨다. 그런데 제자들은 ‘누가 크냐?’로 변론하고 있었다. 참으로 철딱서니 없는 자들이었다. 주님은 좌중을 둘러보셨다. 제자들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다.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셨다.
주님의 말씀은 뜻밖이셨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세상은 높아지기 위해 경쟁하고 서로를 헐뜯고 심지어는 해치기까지 하는 살벌한 전쟁터이다. 상대방을 짓밟아야만 내가 사는 생존경쟁이 치열한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를 설명하시면서 철딱서니 없는 어린 아이를 세우셨다. 어린 아이를 귀중히 여기는 나라를 말씀 하신다. 당시 여자와 어린 아이가 숫자에서도 제외되는 시대였음을 감안한다면 이 말씀은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자들이 자신들의 높음을 세우고 있을 때, 지금까지 하찮게 여겨온 어린 아이를 영접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예배라고 가르치신다.
제자들은 큰 자에 대한 갈망이 있었는데, 주님은 역설적으로 어린 아이를 통해 말씀하신다. 이 땅에서 작은 자로 섬기는 자가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자라는 것이다. 이 원리는 하나님 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섬기는 나라’라는 것이다.
높아지기 위해서는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낮아지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빈 마음만 가지면 되는 나라가 하나님 나라이다.
교회를 섬기면서 마음속에 담은 좌우명이 하나 있다.
“엎드리면 쓰러지지 않는다.”
가장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넘어질까! 떨어질까!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이다. 또 다른 표현은 가장 낮은 자는 기도하는 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아 마음이 무너질 때면, 잠언 말씀으로 치료받는다.
“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그렇다 성도의 삶은 쓰러질 때, 다시 한 번 일으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이다. . 七顚八起(칠전팔기)란 말을 이렇게 바꿔본다.
“다시 한 번 일어나기”
오늘도 낮아지기를 힘쓰며 쓰러질 때마다 다시 한 번 일어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