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 살도록
어제 아침에는 출근하여 일을 하다가 9시쯤에 전화를 받고 보니 상대편에서 ‘왜 전화를 했으면 끊었냐?’고 하면서 ‘당신이 전화를 걸었던지 아니면 직원이 걸었을 테니까 알아보라’고 하면서 나보고 소속과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서 자신의 할 이야기만을 하고 끊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전화기록부를 보니 내가 자매에게 전화번호를 걸을 때 끝번호 6123은 같았는데 국번호를 잘못 눌려서 간 전화로 걸다가 끊었던 전화로 확인이 되었습니다.
분명히 죄송하다고 하였는데 ‘당신이 책임자야 공무원이 그렇게 할 일이 없냐?’ 면서 다그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무리 사람을 보지 않고 전화를 해도 너무나 자신의 이야기만을 하다가 상대방의 기분은 생각지도 한고 끊는 사람을 보면서 전화를 더욱더 친절히 받아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즐거움을 줄 수 있게 해야 갰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나에게 통화를 한 사람은 나에게 오는 전화를 어떻게 하면 기분 좋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전화는 보지 않고 목소리로 통화를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공손하게 받아 아름다운 문화를 만들어 나간다면 좋겠습니다.
나도 어떤 때는 아무런 의미 없이 작은 일에 따지는 경우가 간혹 있었는데 조금 이해를 하며 생활을 한다면 나도 상대방도 즐겁게 될 것입니다.
적어도 내가 전화를 받은 사람은 나와 통화로 인해 기분이 좋아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를 더 받으려고 죄를 지어야 하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이미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죄 가운데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연합하는 침례를 받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십니까?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과 연합하는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묻힌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 가운데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생명 가운데 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도 함께 죽었다면 그분의 부활하심과 같이 우리도 틀림없이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옛 자아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것은 죄에 매인 육체를 죽여서 다시는 죄에 종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인 줄입니다.>(로마서6:1∽6)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여김을 받은 우리는 이 은혜가 너무 커서 항상 감사하게 됩니다.
잘못된 교리로 한번 구원받았으니 세상에서는 어떻게 살아도 된다는 논리로 사람을 유혹하는 이단 집단들은 잘못알고 행하고 있습니다.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미 우리의 죄는 죽었으며 즉 이것을 침례를 통하여 그 분과 함께 옛 자아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이 생명이 너무 귀한데 우리는 신앙교육을 한다는 것이 잘못 가르쳤던지 잘 몰라서 이 소중한 말씀을 잊고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에 말씀이 레마로 나에게 깨달아 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부활하심으로 사망권세를 이겼던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 믿음을 의롭게 여기시므로 우리는 당당히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므로 이제는 그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 어떠한지를 찾아서 살아가면 그 은혜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부활사건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죄에서는 죽고 자유인으로 우리를 부르시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날마다 초정을 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