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가운데서
새벽에 일어나서 조용히 귀를 기울였더니 새벽을 깨우는 닭 울음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꼬끼오’ ‘꼬끼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누가 시키지도 않았건만 어둠을 물리치고 있는 닭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새벽을 깨우는 일을 닭이 깨워준다고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너도 이 세상의 어두움을 물리치고 살라는 메시지로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동식물들의 자연 현상들을 통하여서도 사람을 깨우치고 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는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영성을 보는 시야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제 아침에 출근하려고 집을 나서는데 까치 한 마리가 앞집에 앉아서 나를 행해서 아름답게 소리를 치는 것을 한참이나 보다가 출근을 하였습니다.
까아악 까악 소리를 들으면서 내 마음도 같이 흥겨운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까치가 가지 않고 내가 가는 입구에 앉아서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주어서 하나님께서 이 까치를 통해서 나를 격려해 주시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 너무나 고맙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말씀으로 하나님은 말씀하고 계시지만 때로는 모든 자연 만물을 통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시편47:6)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는 그분을 통해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런 은혜를 믿음으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할 희망가운데서 기뻐하고 있습니다.>(로마서5:1∽2)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는다는 것을 진정으로 안 것은 형제님들과 하나님의 의를 공부하면서입니다.
그 전에는 읽어도 의미가 마음에 다가오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의를 읽고 서로 나누는 중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내가 잘 해보려고 몸부림치지만 변화지 않는 나로 인하여 나도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내가 어떤 일을 지속적으로 잘하고 있느냐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의로 여기신다는 말씀에 자유함을 느꼈습니다.
이것은 내가 잘하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임을 알고서는 나 자신을 정죄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것이 너무나 귀중하여서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여겨주심을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크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내가 살아감으로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됨을 기뻐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그분의 사랑을 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무력한 중에 상태에 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해 죽으셨습니다.>(3∽6)
이것을 깨달은 후에는 자벌적으로 고난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고난을 통하여 인내하는 법을 배우게 하시고 인내하면서 고매한 인격이 되도록 만들어 나가십니다.
결국에는 나를 빚으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믿기에 고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내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연약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나의 죄를 사하여주셨습니다.
오늘 이 사랑의 말씀이 나를 감동시키고 있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