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3;1-13
2009년초 생면부지 목사님께 나의 사정을 메일로 보내고 받은 내용이 예배회복이었습니다. 주일예배는 빠지지 않고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는 무너져 있었고 몸만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후 말씀과 양육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갔고, 나도 드디어 신앙고백으로 십일조 봉투에 헌금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작은 신앙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고 성문과 성벽이 건축되기 시작하였습니다. QT도 시작하였고 밤에 시간을 정해서 기도도 하고 수요예배 목장예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나의 생활을 성별(聖別)하게 되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가지 말아야 할 곳에 대한 갈등이 생기며 내 인생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예배 회복은 계속 나의 생활을 성별함으로 그 다음 그 다음으로 이어져 지금까지 오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침QT와 밤 묵상기도의 두 망대를 통하여 돌아보고 돌이켜 오고 있습니다. 두 망대는 건축과 중수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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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양문을 통해서 예배 회복에 들어섰지만 나의 뻔질거리는 자존심과 교만함은 어문을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막은 것이 말씀이었습니다. 주일예배 말씀은 인터넷을 열고 들을 수있지만 수요예배 말씀은 자물쇠 같아서 내가 열고 들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습니다. 그래도 떠나기로 결심하고 수요예배 후에 집에 가는데 교통사고라는 빗장이 나를 막았습니다. 사고순간 떠나면 큰일나겠다는 경고의 메시지로 들렸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경고를 무시하고 살다가 이 모양인데... 두렵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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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부터 다시 나의 성벽을 중수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의 체면 자존심이 조금씩 내려놓아지고 나의 교만을 보면서 힘들어 했습니다. 평생 가지고 살았던 편견과 고정관념도 말씀을 통해 건드려지면서 나의 성벽은 중수 되어갔습니다.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뭉쳐있던 나의 인생관도 깨지며 구속사적 가치관이 세워져 갔습니다. 베풀 줄 몰랐고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나의 성품도 무너지며 전체적이고 구체적인 인생 개조 작업이 이루어져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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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무너지기 싫었고 깨지기 힘들었던 나의 옛 문이 두 딸이었습니다. 간직하고 싶었고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 옛 문마저 작년에 가나안 정복전쟁 끝나고 중수되어 들보 얹고 문짝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출 정도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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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주일예배 다음 수요예배 다음 목장 예배로 일주일을 보내고 QT도 기도도 그 다음 그 다음하며 오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성도로서 잘사는 것이라 배웠고 맞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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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도 내 속에 깨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는 한 부분이 있어 매우 답답하였습니다. 답답하여 터질 것같은 한 부분을 누군가가 분석하고 파헤쳐주기를 바랬습니다. 지금은 많이 약해졌지만 뭔지 모를 그 한부분이 나를 힘들게 했고, 아마도 풀무망대의 연단을 통해서 놓아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정답은 내려놓고 내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골짜기 문까지 비우고 낮아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골짜기 문을 중수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지난시절의 옛 문을 단단하게 지은 후에 골짜기 문까지 중수해야 구원의 과정이고, 분문까지 이른다면 나의 성벽을 잘 지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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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주님을 알아가며 예배가 회복되었지만
빠져 나가려고 하였습니다.
용서하여 주옵소서
옛 문을 지켜주시고 골짜기 문을 지나 분문을 중수하기까지
도우시고 인도하여 주옵소서. Jesus Name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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