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2:3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까…
느2:4 …왕이 내게 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느2:10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가 이스라엘 자손을 흥왕하게 하려는 사람이 왔다 함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은 후 이를 두고 수개월간 기도해왔을 느헤미야… 이 기도의 응답으로, 느헤미야의 수심을 알아보고 원하는 것을 묻는 왕의 질문에 곧 바로 다시 기도합니다. 순간순간 닥치는 상황을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 묻고 가는 것일 텐데, 잘 묻는 자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선한 손길을 느헤미야를 통해서도 보여주십니다. 왕이 묻는 그 짧은 순간에도 반사적으로 묵도가 되는 느헤미야가 부럽습니다.
오늘 본문에 수심, 근심이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오고, 서로 다른 두 종류의 근심이 나옵니다. 느헤미야의 근심은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한 영적인 근심이었던 반면에, 산발랏과 도비야의 근심은 개인의 유익을 위한 지극히 육적인 근심이었습니다. 근심의 본질부터가 다릅니다. 이타적인 근심과 이기적인 근심…
내가 하는 근심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언뜻 머리 속에 직장 생활 잘 유지해야겠다는 근심, 온전한 가정은 언제 이룰까 하는 근심 등이 먼저 떠오릅니다. 목장과 목원을 위한 근심은 그 뒤에 생각나는 것을 보면 영적인 근심보다 육적인 근심이 더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모습은 느헤미야보다 산발랏, 도비야 쪽에 더 가까운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하는 습관도, 근심하는 수준도 느헤미야를 닮아가고 싶습니다.
오늘 닥치는 선택의 순간, 갈등의 순간에 느헤미야처럼 먼저 묵도하겠습니다.
내가 근심하는 것들을 적어보고 느헤미야의 근심인지, 산발랏과 도비야의 근심인지 나눠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