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성경말씀은 빌레몬서 1장 1-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이전에는 그의 종이었으나 이제 주 예수 안에서 한 형제가 된 오네시모를
다시 받아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감옥에서 씁니다. 바울은 이것을 당당하게 명령할 수도
있지만 사랑으로 간청하고 있습니다.
요즘 하루의 대부분을 인도네시아 선교팀과 함께 선교에 필요한 다양한 준비를 하며 보냅니다.
항상 하루의 시작을 말씀 묵상으로 시작하는데
이 날의 질문제목은 : “당신의 감옥은 무엇인가? 당신의 요압은 누구인가?” 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요압과 닮은 오네시모와 빌레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의 감옥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내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기 전에는 거뜬하게 감당했던 육체의 건강함을 아쉬워하며 나의 감옥에서
부대끼며 지냅니다.
지금 내가 직면하고 있는 또 다른 한계와 고난은 이러한 환경과 나이가 들어가며 약해져 가는
것을 현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태권도 팀에 속해서 태권도 시범을 보일 수는 없으나 복음을 제시하기 위해서
설교 전에 행해지는 예수님에 관한 내용의 단막극에서 내가 맡은 역할에 집중할 수는 있습니다.
나의 요압은 여교감 선생님입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내가 처리하기 곤란한 폭행사건을 접했을 때 분명하고 확실한 결정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그녀는 폭행 피해자 학생의 부모님들과의 대화하는 원칙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폭력 가해 학생을 학교로부터 영구적으로 추방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면적으로는 그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녀가 아니라 내가 내리는 결정이 되었고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는 내가 해야 할 몇 가지 결정들을 대신해서 내렸고 나는 그것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했어야 할 일이었고 또한 그 문제 때문에 힘들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스스로 요압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한 셈입니다.
폭력으로 인해 일어난 문제는 내가 피하고자 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나는 학교의 책임자입니다. 모두가 나에게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대책을 세우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실수를 하거나 반대에 부딪히게 될 가능성 매우 높습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대부분 사람들이 반대하는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지만 그것은 옳은 일이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학교에서 쫓겨났던 아이들을 복귀시키고자 하는 나의 결정은 강한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것이고 그것 때문에 주저하게 됩니다. 그러한 주저함은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내게는 기도와 묵상의 시간이 필요했으며 관계된 모든 사람들에게 최선의 선택을 하기위한 면밀한 검토와 객관적인 관점을 갖기 위한 시간 또한 필요했음을 말했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문제의 폭력학생에게 나의 분노를 표출함으로써 교감 선생님과 담당 실무자들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잘못된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그 소년의 가정은 이번 폭행 사건으로 위기에 빠졌습니다.
아이와 엄마는 모두 정신과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연약한 크리스천이고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들을 외면한다면 그들은 누구에게 도움을 구해야 할까요?
그들이 학교에 남게 된다고 해도 문제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이 문제에 집중하고 기도하기 위해서 오늘 아침부터 내일 아침까지 금식하는 것이
나의 적용의 일부입니다.
직장에서의 문제에 직면한 저에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다니엘처럼 이번 금식이 문제의 핵심을 분명하게 보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번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에게 행하는 것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