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4일 수요일
누가복음 8:1-3
“두루 다니사”
모든 사람의 지탄을 받던 한 여인이었다. 누가보아도 명백한 죄인이었던 불행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주님을 만났을 때, 자신을 얽매고 있던 죄의 사슬과 자존감이 회복되었다. 그녀는 눈물과 섬김으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였을 때, 주님의 하나님 되심이 폭로되었다. 가련한 여인을 향하여 자신의 죄를 사하는 권세를 선포하셨다. 그녀는 ‘옥토’였다. 그에 반해 바리새인은 자신이 설정한 종교적 기준에 얽매어 주님의 하나님 되심을 보지 못하였다. 바리새인은 ‘길가’였다. 주님은 그곳을 떠나셨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 그 하나님 나라가 바로 복음이었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로는 만족하실 수 없으셨다. 목마르셨다. 하나님 나라를 전하시기 위해서 각 성을 방문하셨다. 마을에 두루 다니셨다. 다시 말하면 골목골목을 다니시며 기쁜 소식을 전하셨다.
주님은 낮은 곳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죽어가는 생명을 향해서 나아가셨다. 구석구석을 살피시며 찾아가셨다는 말이다. 일곱 귀신 들린 마리아를 찾아가셨고 그를 고치셨다. 그녀를 믿음의 공동체로 들어오도록 회복시키셨다.
하나님 나라는 모든 얽매인 것이 풀리는 자유의 나라이다.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으나 빈 그물로 실망과 허탈함 속에서도 그물을 씻고 있던 현실주의자 베드로에게 진정한 내일이 바로 주님이심을 알리셨다.
병든 자를 고치셨다.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셨다. 그러나 오늘 소개되고 있는 여인들은 자신을 고치신 예수님과 함께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소유로 섬겼다고 했다. 인생의 주인이 주님으로 바뀐 것이다. 그들은 헤롯의 청지기였으나 이제는 주님만을 섬기는 주님의 청지기가 된 것이다. 예수를 만난 증거는 이처럼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당시 여인들의 인권은 보잘 것이 없을 때였다. 법정에서 증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시대였다. 그런데 오늘 여인들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일곱 귀신 들렸던 막달라 마리아와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수산나였다. 그렇다면 그녀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편지의 수신인이었던 데오빌로 각하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정치적으로 중앙 무대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로 인해 헤롯의 청지기 구사와는 일면식이 있었을 것이다. 누가는 이러한 점을 들어 그녀들의 이름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편지를 읽는 데오빌로는 자신뿐만 아니라 헤롯 궁정까지 복음이 들어갔다는 사실에 고무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들의 이름과 출신을 알림으로서 예수님의 영향력이 유다 심장부까지 미치고 있었음을 보여주려는 누가의 세심한 기록이다.
주님은 갈릴리 땅에도 필요하신 분이지만 헤롯 궁정 안에도 필요하신 분이심을 보여준다. 복음의 편만함을 보여주고 있다. 주님께서 두루 다니셨던 골목골목은 이 세상 어느 곳이라 할지라도 내가 가야할 땅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