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2일 다니엘 10장 10~21절 ‘겸비하던 날’
#65279;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이곳에 왔는데도 하나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아서 담임 목사님이 선포하는 주일예배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예배중 조는 경우(학생때부터 강의 시간에만 조는 습관이 있었음)가 많았습니다. 목장예배에서 나눔을 하다보니 딸 문제보다 우리부부간의 문제가 더 심각함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어찌#46124;던 무엇이든 매달려야할 판이라 목장예배에서 내려주는 처방을 무조건 적용하려고 했습니다.
#65279;
목사님이 말씀하신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는 말씀이 조금씩 인정되기 시작했고 일대일 양육을 통해 ‘인간은 100% 죄인이다’ ‘내 죄를 보라’라는 말씀이 조금씩 이해가 #46124;으며 큐티를 어거지 시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는 이슬비라는 책자로 큐티를 할 수 있었는데 말 그대로 ‘이슬비’처럼 내 몸이 말씀으로 적시다가 흠뻑 적는 그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망했습니다. 이렇게 소망했던 어느날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제게 영육간의 강건함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양육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택배 일을 시작으로 육적인 강건함 주셨고 목장예배와 수요예배 그리고 부목자로 섬기면서도 이슬비에 옷 졌듯이 조금씩 큐티로 영적인 강건함을 주시고 계십니다. 이슬비와 큐틴을 거치며 그날 본문 한번 읽고 그날 간증을 화장실에 한번 읽기 시작했던 것이 양육기간 동안에는 주제큐티도 해야했고 매일 큐티의 느낀 점을 적어내야 했으며, 핸드폰의 발달로 문자로 시작한 큐티를 카톡으로 올릴 수 있는 편리함으로 바뀌게 되니까 변명할 여지가 없이 큐티를 카톡방에 올려야 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제가 하나씩 겸비하고 있던 어느 날 제 말이 응답 받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제가 깨달으려 겸비하게 하기로 결심하고 각종 공예배 사수하고 큐티를 할때부터 제 말이 응답 받았다고 하십니다. 할렐루야!
적용/ 자원함보다 부르심이 먼저라는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