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2일 월요일
누가복음 7:18-35
“의문”
그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였다. 그의 외침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죄인들이 스스로 요단강에 나와서 물로 세례를 받았다. 그의 양식은 석청이요 메뚜기였다. 그는 약대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금식을 하면서 외치고 있었다. 그의 수도사 같은 범상치 않은 삶에 많은 사람들이 경외감을 갖고 있었다.
그에 반해 예수님의 공생애는 상반된 평가로 엇갈리고 있었다. 세례요한의 행동에서 경건의 모습을 보았다면 예수님에게서는 파격이 보였다.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외치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데 주님은 그들을 부르시고 죄인들의 친구처럼 그들과 먹고 마셨다. 아마도 세례요한이 기대하고 그리던 하나님의 나라와는 많은 부분 일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령이 충만한 세례요한조차 의심이 가는 예수님의 행보였다. 아마도 그 역시 로마의 속국으로부터 나라의 독립을 꿈꾸었고, 당연히 강력한 왕권을 가진 메시야의 출연을 기대하였을 것이다. 그러한 기대와는 다른 길을 걸어가고 있으신 예수님에 대해서 의심이 가는 것은 당연하였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답을 얻기 위해 두 명의 제자를 예수님께 파견한다.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이라는 질문을 던짐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셨다. 또 많은 맹인들 보게 하셨다. 요한의 제자들이 그 광경을 똑똑히 목격하였다. 답에 앞서서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 후에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셨다.
이사야서 말씀을 인용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가복음 7:22
주님께서 기록된 말씀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셨다. 오늘도 동일하다. 기록된 말씀이 나의 삶을 지배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묵상의 삶이요 바로 하나님 나라를 사는 삶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세례요한의 생각과는 다른 하나님의 나라였다.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는 강력한 왕권으로 지배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사랑으로 다스리는 나라였다. 줌으로써 갖게 되는 나라였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는 나라였다. 뺨을 때리는 자에게 다른 뺨을 돌려대는 나라, 겉옷을 탈취하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않는 나라였다. 원수를 사랑하는 나라였다.
오늘도 나를 향해 뺨을 때리기를 기다리고 있어야한다. 나를 비난하고 나를 넘어뜨리려고 하는 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으로 나아간다. 하나님 나라는 다른 뺨을 준비하고 속옷을 준비하는 나라이다. 원수를 피하지 않는 나라, 그를 기다리며 사랑하는 나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