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31일 토요일
누가복음 7:11-17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다.”
11절 ‘그 후에’라는 말은 누가복음 서두에 밝힌 대로 차례대로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은 백부장의 하인이 주님의 원격진료(?)로 낫은 후에 ‘나인’이란 성으로 가셨다. 제자와 많은 무리가 동행했다.
성문에 가까이 이르실 때에 두 종류의 행렬이 만나게 되었다. 나인 성으로 들어가는 예수를 따르는 행렬과 나인 성에서 나오는 장사 행렬이었다. 하나는 기쁨의 행렬이었고 또 하나는 슬픔의 행렬이었다. 사람들이 죽은 자를 메고 나오고 있었다. 외아들이 죽었는데 그 어머니 역시 과부라는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든 소망이 끊어진 가장 슬픈 행렬이었다. 과부를 보셨다. 불쌍히 여기셨다. 울지 말라고 위로하셨다. 그리고 가까이 가셨다 관에 손을 대셨다. 죽음의 행렬이 잠시 멈추었다. 두 행렬의 모든 사람들이 주시하고 있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죽음을 다스리고 계신다. 예수님의 말씀에 죽은 자가 일어나 앉고 말도 하였다. 슬픔과 죽음의 행렬이 일순간 기쁨과 생명의 행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모든 청중이 두려워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탄성처럼 고백했다.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고 했다.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퍼졌다.
어제는 슬픈 소식이 들렸다. 세월호 선체를 절단하는 작업 중에 잠수사 한 명이 숨지는 사고였다. 실종자를 찾기 위한 작업이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이 아니었다. 죽은 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온 국민이 슬픔에 빠진 45일 간이었다. 비통함과 슬픔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침몰하는 배를 보면서도 너무나 무기력하게 한 명의 인명구조도 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안타까움에 한국도 세월호와 함께 침몰 당했다.
교회 지도자들의 입을 통해 들려오는 소식들은 안타까움을 넘어서 참담하기까지 하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할 말조차도 구분 못하는 지도자들의 실언에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그럼에도 우리의 소망이 주님께 있음을 바라본다. 나인성 과부의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시는 사랑의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되심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본다.
오늘도 죽음이라는 세월호가 서서히 침몰되고 있음을 보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췄다고 아우성이다. 이대로 가면 유럽의 교회처럼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대부분이다. 교회 성장이 멈춘다는 말의 함정은 교회가 기업처럼 생존에 사활을 건다는 것이다. 성장이 멈췄다는 사실은 수많은 생명이 죽어가고 있다는 본질의 문제이다.
세월호의 안타까운 죽음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면서도 이웃이 오늘도 죽음의 행진을 하고 있는데도 슬퍼하지 않는 무감각이 더 무서운 시대이다.
주님은 나인성 과부를 보셨고 불쌍히 여기셨고 그녀를 위로하셨고 아들을 살리셨다. 오늘도 우리들의 시선은 예수를 알지 못해 죽어가고 있는 수많은 행렬을 보아야만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외쳐야만 한다. 싸구려 복음이 아니라,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신 십자가의 사랑을 전해야만 한다. 죽음의 행렬을 향해 예수만이 살길이라고 외쳐야 한다. 그것이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자, 오늘 내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임을 명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