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라.
사람의 영을 개발하는 내 가지 방법 중에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지난 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의 중요성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한 번 우리의 영과 마음에 굳게 거하기 시작하면 이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것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1:22)
야고보서 앞부분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약1:21#12316;24)
야고보는 우리가 말씀을 받았으면 말씀을 믿고 행하는 것, 즉 실천에 올ㄹㅁ겨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뜻하는 바를 알 수 있게 됩니다만 실제로 그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밤낮으로” 말씀을 묵상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하나님은 이어서 “네가 지켜 행하면”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말씀을 읽고 묵상하였으면 행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행하는 사람은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듣기만 하는 사람은 많으나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적습니다.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이며 “아멘, 형제님, 그 말씀은 진리입니다.” 라고 말은 하지만 나가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습니다.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허기 전에 말씀이 우리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없습니다.
어떻게 “말씀을 실천” 할 수 있을까요?
야고보가 우리가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했을 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었을까요?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가 말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십계명은 영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위해 주어진 것이었으며 야고보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살아 있는 거듭난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십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입니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새 언약(신약 성경) 아래서 우리는 새로운 계명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사랑이라는 새 계명에 순종하게 되면 모든 다른 계명은 다 포함되어 버립니다.
가슴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치지 않을 것이며 형제를 미워하지 않으며 살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훔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죽도록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야고보는 또한 사람이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는 자가 되지 않으면 그는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스스로 속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마귀가 그들을 속이거나 미혹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속고 미혹되어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가 우리가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라는 말이며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새 언약의 빛 가운데서 살아야 합니다.
50년 전 침대에 누워 꼼짝 못하고 있던 때 나는 이것을 배웠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늘 걱정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나도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6:31#12316;32)
이 성경 말씀을 읽었을 때 내가 가진 성경에는 난하주가 있었는데 빌립보서 4장 6절을 참고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이 구절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어떤 것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라는 말입니다.
나는 주님께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어떻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고 살 수 있습니까? 나는 염려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습니다.”
나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염려하고 걱정하는 데는 챔피언이었습니다.
두 분을 보고 자라면서 나는 걱정하는 것을 배웠던 것입니다.
나는 심장병으로 거의 죽을 뻔 하였고 무덤에 갈 때까지 남은 인생을 나 자신을 염려하며 살아 왔었습니다.
내 성경의 다는 난하주는 베드로전서 5장 7절을 참고하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했습니다.
나는 그 말씀을 실천하였습니다.
나는 나의 모든 염려, 걱정거리를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리고 나는 야고보가 이렇게 말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약1:2#12316;3)
여기서 “시험(temptations)” 이라고 번역한 그리스어에는 “시험(tests)”이나 “시련(trials)을 의미합니다.
고지서 대금도 내고 아이들은 건강하고 주머니에 돈도 잇고 모든 일이 잘 되어갈 때 기뻐하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험과 시련을 만날 때 기쁘게 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어려움을 통해서 승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당신이 당면한 시련을 기쁘게 여기고 있습니까?
기쁘게 여겨야 합니다.
한 번 기쁘게 여겨 보십시오.
큰 차이가 여기서 생긴다는 것을 당신은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환자였지만 기쁘게 여김으로써 이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우리는 어떤 어려운 경우에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시험과 시련에 대하여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야고보가 말한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스스로를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기도로써 일시적으로 서로 도울 수는 있지만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말씀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 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가다가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셔서 나는 기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삶 전체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의 삶을 발전시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의 속 사람이 개발됩니다.
속 사람이 겉 사람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하면 밖에서 오는 걱정거리가 우리를 지배할 수 없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