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영을 개발하는 법(2)
한 번은 이단 교회에서 출판한 책을 보았습니다.
책 표지에 사람이 죽으면 개처럼 죽는 것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그 책을 읽어보니 그들의 주장은 구약은 동물의 혼에 관해서 말하고 있으나 기독교는 영원히 사는 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둘 다 맞는 말이지만 설명이 필요한 말입니다.
원래 히브리어 성경이 동물의 혼에 관해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동물도 혼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동물도 어느 정도의 생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혼의 기능입니다.
동물도 감정을 표현하는데 이것도 역시 혼의 기능입니다.
전도서 3장 21절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 알랴?” 라고 했는데 여기서 혼은 동물의 호흡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동물은 영이 아니고 단순한 혼과 몸으로 되어 있을 뿐입니다.
동물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영입니다.
사람은 세 가지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영이며, 혼을 가지고 있고, 몸 안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거짓 사교에서 나온 책들은 사람의 영과 호흡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만일 이 말이 맞는다면 바울이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라고 말했을 때 바울은 “나의 호흡으로 섬기는 하나님” 이라고 말하는 것이 됩니다.
바울이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고전14:14)
라고 말할 때 “나는 호흡으로 기도하거니와”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이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다시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산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하늘에 기록한 장자들의 총회와 교회와 만민의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및 온전케 된 의인의 영들과”(히12:22#12316;23)
만일 “영(spirit)”이 “호흡(breath)”을 의미한다면 바울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는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호흡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호흡을 온전하게 하시려고 죽으셨다는 말이 됩니다.
너무나 우스꽝스런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두 단어가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가정한다면 이것이 논리적인 결론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설교자들이 그 “혼(souls)”이 구원 받았다고 하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구원받은 것은 그 사람의 혼이 아니라 그 사람의 거듭난 영입니다.
야고보도 죄인이 아니라 성도들에게 쓴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야고보는 반복해서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 버리고 능히 너희 영혼을 구원할 바 마음에 심긴 도를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야고보서1:21#12316;25)
야고보는 성도들에게 만일 그들의 혼(마음)이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가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도 서도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1#12316;2)
바울은 야고보가 말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했고 야고보는 “너의 영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고 말했습니다.
두 사도는 마음(mind) 즉 혼(soul)을 새롭게 하는 것 회복시키는 것, 구원하는 것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시편 23편에서도 봅니다.
“내 혼(soul)을 소생시키시고”(3절) 여기서도 “내 영을 소생시키시고” 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소생되었다는 것은 이미 있던 것을 다시 회복시킨다는 말입니다.
“소생시킨다.”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새롭게 하다”라고 번역된 그리스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회복시키다(restore)” 라는 말과 “새롭게 하다.(renew)” 라는 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래된 가구의 부품을 회복시키거나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혼은 새롭게 하거나 회복시킴으로써 구원 받게 됩니다.
야고보가 한 말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써 믿는 자가 된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받음으로써 우리의 마음, 즉 혼을 새롭게 하고 회복하고 구원해야 합니다.
이것은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말씀을 통해서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이 왜 이렇게 중요할까요?
여러분의 영은 거듭나서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한다 하더라고 여러분의 마음이 말씀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되지 않으면 (야고보의 표현을 따르자면 혼이 구원받지 않으면) 몸과 육체의 감각으로 교육을 받아 온 마음은 여러분이 어린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도록 몸을 편들게 됩니다.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적이며 몸이 다스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너희가 아직도 육신적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이 구절을 어떤 번역본은 “너희는 몸이 지배하는 사람이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몸은 새롭게 되지 않은 마음을 통하여 그들의 영을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발전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영적인 어린아이로서 살다가 죽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믿음으로 사는 것은 항상 막연합니다.
그들은 믿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보는 것으로 말하지 않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배우지 않고는 그리스도인으로 온전하게 살 수 없습니다.
육신으로 사는 사람은 불신앙 속에 살며 항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삶은 전쟁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새롭게 된 적이 없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전쟁을 승리하셨다는 거도 모릅니다.
그들은 마귀는 실패한 적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그들은 여전히 자기 자신의 힘으로 마귀와 싸우려고 하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탈진하여 대항할 힘이 없을 때까지 싸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새롭게 하면 새롭게 된 마음을 통하여 그의 영이 몸을 다스릴 수 있게 됩니다.
말씀을 알고 있기 때문에 혼(마음)은 이제 영의 편을 들게 됩니다.
혼은 말씀으로 새롭게 됩니다.
새롭게 된 혼(마음)은 영이 다스리도록 허락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 사람의 영을 통하여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