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8일 일요일
다니엘 3:19-30
“체험신앙 믿음신앙”
절대권위를 가진 느부갓네살이었다. 자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당돌하게 나오자 얼굴빛을 바꾸었다. 그들을 아끼는 마음이 있었기에 살 수 있는 기회를 줄려고 했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단호하게 왕의 회유를 거절하였다. 사랑하는 자로부터의 배신에 왕의 분노가 폭발했다. 풀무불의 강도를 7배나 높였다. 세 친구를 붙들었던 자가 불에 타 죽는 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불의 세기가 강렬하였다. 느부갓네살의 분노와 같았다. 그들은 겉옷과 속옷 모자 그리고 다른 옷을 입은 채로 묶여져 던져졌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할 때에, 맹렬한 불 속에서 네 사람의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그들의 결박은 이미 풀어져 있고 세 사람 외, 또 한 사람이 목격되었는데 신들의 아들과 같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 분이 누구일까? 분명한 것은 느부갓네살의 눈에도 특별한 분으로 보였다. 나는 주님이시라고 믿고 싶다. 불속에서 함께 계신 주님을 찬양한다.
느부갓네살 왕은 급히 풀무불 가까이에 가서 올라올 것을 요청하였다. 아마도 이때에 다니엘의 꿈 해석했던 장면을 기억했을 것이다. 다니엘에게 무릎 꿇었던 바로 그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라고 부른다. 제 정신이 든 것이다. 이런 반전이 또 있을까? 머리털, 겉옷 빛도 변하지 않았고 불 탄 냄새도 없었다.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던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을 다시 만난 것이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베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의 천사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들의 몸을 바쳐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고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절로 찬송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높이고 있다. 이런 것을 보고 체험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다니엘의 세 친구는 보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였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이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만을 선택한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망했지만 믿음의 사람들을 그루터기처럼 남겨놓으셨다. 아 여기에 나의 소망이 있다. 빛이 있다.
체험 신앙의 허점은 시간이 흐르면 잊어버린다는 점이다. 우리는 흔히 보여주면 믿겠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내 경험만 보아도 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중요하고 실제적이라는 점이다. 내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동기도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 인 것을 분명하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나와 함께 계신 주님을 믿으면서 뜨겁지 않다고 유혹하는 음란의 풀무불 앞에서 믿음을 지키고 싶다. 모든 사람이 죽어도 나만 살겠다고 탈출한 세월호 선장처럼 이기적 삶이 팽배한 이 땅에서 주님의 사랑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며 저주와 미움의 풀무불이 활활 타오르는 세상을 향하여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