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은 어디 있느냐
작성자명 [이준우]
댓글 0
날짜 2008.02.2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마지막 여행 중이셨습니다.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의 한 마을로 들어가셨습니다.
거기에 10명의 문둥병자가 멀리 서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13)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14)
아무리 심각한 병이라고 주님의 긍휼하심이 있으면 소망이 있습니다.
주님의 긍휼하심은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상관없이 모두에게 임하십니다.
10명의 문둥병자는 길을 가다가 자신이 깨끗해 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나은 것을 발견한 열 사람 중에 하나만 하나님을 영광을 돌렸습니다.
돌아와 예수님께 엎드려 사례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유대인이 멸시하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7)
병에서 나았으나 감사하지 않은 아홉에 대하여 물으십니다.
아홉 명이 나중에 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합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후대에 기록된 것이기에
나중에 왔는지 안 왔는지 이미 확인이 되었습니다.
왜 이 사람들이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그렇게 몰염치한 사람들일까요.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얼굴을 가리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이제 문둥병에서 회복되어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데,
자신의 얼굴이 알려지면서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게 됩니다.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돌아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미국에 이민와서 처음에 교회의 도움을 많이 받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출석을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교회를 옮기던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에 처음 왔을 때 헤매며 우왕좌왕 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에게서 떠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과거를 정리하고 이제 부터는 우아하게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자존심이 더 우선시 비율이 90%입니다.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난 것을 감사하기보다,
과거의 아픔을 지워버리고 숨기고 싶어합니다.
과거의 아픔은 숨김으로가 아니라,
정리하여 매듭을 지음으로 온전해지고 자유롭게 됩니다.
감사는 매듭을 짓는 일입니다.
신세를 지고 감사하지 않았다면,
기도 응답에 감사하지 않았다면 매듭이 지어진 것이 아닙니다.
속이 빈 대나무가 그렇게 높이 올라가는 것은 매듭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의 상황을 감사로 매듭을 짓지 않으면 삶이 견고해 지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산 인생은 온데 간데 없고 자기 공로와 자랑만 남습니다.
감사치 않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17-18)
예수님께서는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감사함이 없는 시대에서 언제나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대부분이 자기가 했다며 자랑하는 시대에서
나는 하나님께서 하셨다며 고백하게 하소서.
매 순간마다 감사로 매듭을 지은 견고한 인생이 되게 하소서.
감사의 매듭이 그 날까지 온전하게 연결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