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둥병보다 더 무서운 병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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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2.27
2008-02-27(수) 누가복음 17:11-19 ‘문둥병보다 더 무서운 병’
주일 늦은 저녁에, 어떤 지체로부터 아리송한 문자가 왔습니다.
‘한 턱 쏘러 갈 테니 자지 말고 기다리세요’
하나님 품을 떠나 교회도 나오지 않아 얼굴 본 지도 꽤 오래 됐는데
한 턱 쏜다니, 로또에 당첨됐나, 큰 계약을 성사시켰나...?
그런데 그 날 오지 않았고, 그 후 전화해도 받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 모르지만 , 혹시 로또에 당첨 되었다면
그의 삶이 어떻게 전개될까, 즐거운 상상을 해봤는데
오늘 본문의 문둥병자를 묵상하며 두 가지 예측을 해봅니다.
감사하며 돌아와 예수님 발아래 무릎 꿇거나, 더 멀리 떠나가거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 가지 반성을 했습니다.
내가 그 형제의 구원을 위해 얼마나 애통한 마음으로 기도했는지...
다시 돌아와 형제의 기도에 감사한다고 내 손 꼭 잡을 때
내가 한 일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그 형제에게 덜 미안해 할 수 있고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할 수 있을지...
그 형제는 지금 문둥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님뿐임을
오늘 말씀을 통해 또 깨달을 수 있는데
세상에는 문둥병보다 더 무섭고
예수님도 고치기 힘든 병이 있으니
그게 바로 제가 앓고 있는 생색병입니다.
그 형제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보다
겉으로 보이는 사랑이 커 보이기를 원했으며
사랑이 커서 미움도 크다고 나를 변명한 모든 말들이
생색병에서 나온 것임을 고백합니다.
병 고침 받은 열 명의 문둥병자 중에 한사람이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감사했을 때
예수님은 나머지 아홉을 찾으셨는데
그건 생색이 아니라 구원의 애통함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마음으로 자식을 생각하는, 그런 마음...
그 마음을 닮아 가는 길이 구원의 여정임을 알고 있지만
나는 형제의 구원에 무관심했고
기도 하나에도 생색을 잊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하지도 못하면서
유익한 종이라며 아버지 앞에서도 생색내기에 바빴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이루어 가는 길에 함께 하는 기쁨도
형제를 구원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열매도 없었습니다.
구속의 은혜로 사망에서 건져 주셨지만
나 혼자 걸어가는 구원의 길도 힘이 부쳐
생색만 낼 줄 알았지, 형제 손 잡아 줄 사랑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 꿇은 한 명의 문둥병자처럼
오늘, 내 생색병을 고침 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합니다.
문둥병의 고난이
그 형제를 예수님 앞에 무릎 꿇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
내 생색병도 함께 고침 받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아버지께 간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