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13일 화요일
다니엘서 2:1-13
“두 종류의 인생”
이런 황당한 이야기가 어디 있나.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는 번민에 빠졌다. 예사롭지 않은 꿈이었다. 분명한 메시지가 담긴 꿈이었기에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를 불렀다. 자신의 꿈을 알아낸 후, 그 꿈을 해석하라는 명령이었다. 이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었다. 그들이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죽음을 면지 못하리라는 것이었다.
말도 되지 않는 일이었다. 타인의 머릿속의 꿈을 알아내고 해석하라는 얼토당토아니한 왕의 명령이었다. 세상의 왕의 권력이 이처럼 추상같았다.
느부갓네살도 알았다. 그들이 알지 못할 것을. 그럼에도 그의 번민이 깊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다 못해 무리한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왕이었지만 잠 못 이루는 밤을 어찌할 수 없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자신의 한계를 폭정으로 넘어보려고 안간힘을 애쓰고 있는 한 사람. 그가 바로 느부갓네살 왕이었다.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되었다.
또 한 사람의 고백이 있다.
“왕께서 물으신 것은 어려운 일이라 육체와 함께 살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다니엘서 2:11
목숨이 경각에 달린 지혜자들이었다. 그들의 고백은 진실이었다. 인생들의 한계를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자와 경각에 달리게 한 자.
오늘 두 종류의 인간을 통해서 인간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본다.
우리나라 최대 재벌인 삼성가의 이건희 회장이 심장마비 증세로 인해 치료를 받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다. 74세 밖에 안 되었는데 생명이 위중하다는 것이다. 그 많은 돈으로도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실이 과학의 한계와 인간의 한계를 동시에 보는 것이다.
나에게 있어서 한계는 무엇인가? 느부갓네살처럼 번민하는 일은 없는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애쓰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목장에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식 문제가 대화의 중심에 있다.
타일러도 보고 느부갓네살처럼 으름장도 놓아보고 별 방법을 다 써보지만, 그 끝은 결국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최선이란 결론을 내리게 된다.
내가 해볼 것 다 해보고서야 내린 처방이 하나님께서 하셔야한다는 것. 이것이 진리인 것을 다시금 깨달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