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9일 야고보서 5장 1~11절 ‘비를 기다리며’(큐티인 원본)
어려서부터 별 부족함이 없이 자란 저는 용돈을 받으면 필요한 것을 산 뒤 항상 남겨서 모아두었고 꼭 필요한 것은 그렇게 모은 돈으로 사곤 했습니다. 대학시절 내내 청바지만 입고 신발도 달아 미끌어질 때까지 신고 다니던 습관때문인지, 경제적 여유가 생긴 뒤에도 필요한 것만 사고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결혼 후 아내도 당연히 저와 같을 거라 생각하고 모든 경제권을 맡겼지만, 10여 년 전 사업이 망하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오자 아내의 탓인 것만 같았습니다.
저는 막내였지만 외아들이었기에 결혼해서 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전에 아내도 이점은 인정했었기에 저는 아내가 시부모님과 함께 사는 것을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부부간의 기선제압에서 절대로 밀리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아내가 부모님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듣지도 않고 그저 혈기만 냈습니다. 아내가 여러번 호소해도 아내의 마음을 헤아려볼 생각은 않고 "피곤해 죽겠는데 집안 일까지 신경써야 되냐"며 짜증만 냈습니다. 당시 직장에서 업무가 많아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 했고, 그러다보니 스트레스가 쌓여갔습니다. 주말에 아이들을 위해 야외로 나들이를 갔다오는 것도 피곤하기만 했고, 아내와의 불통으로 스트레스는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동료들과의 음주와 도박으로 주중 3~4일간 외박을 하고 새벽에 들어와 옷만 갈아입고 출근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그 무렵 까다로우신 아버지와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의 잔소리로 아내의 마음에는 이중으로 상처가 쌓여 갔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부모님이 돌아가실때까지 부모님과 제게 대항하지 않았습니다.(6절)
둘째 딸의 조현병(정신분열) 고난이 온전히 해석되지 않던 우리 가족은 친구의 인도로 우리들교회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시집살이와 남편의 혈기로 받은 상처에 대해 길이 참으며 함구하고 있다가 목장에서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그때도 저는 아내가 흥분해서 하는 고백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지난 일을 오픈하면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아내의 이야기 속의 한 맺친 상처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양육훈련을 받으면서 내 죄가 보이고 아내의 상처가 내 탓임을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아내의 상처가 너무나 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늦었지만 아내를 위해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는 생각으로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안아주고, 손을 잡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의 상처가 온전히 회복되는 데 10년이 걸릴지 20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반으로 줄일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 시작한 적용입니다. 아내가 농부처럼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렸듯이(7절) 저도 남편이자 아빠로서 죽어지고 썩어지는 밀알이 되어 비를 기다리며 계속 말씀을 적용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적용하기/ 아내의 말에 토 달지않고 인정하겠습니다. 아내에게 감사할 일을 하루에 한 개씩 찾아 표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