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5:1-11
어쩌면 남의 고난은 그렇게 이해가 잘되고
해석도 잘되며, 처방도 잘 나오는지요
제 고난은 해석 정도는 되어도
적용은 해도 해도 너무나 안되는 것 같아서 낙심이 될 때가 많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시간이 좀 나서
여러분을 만났습니다.
우리 교회 아웃리치 팀과 방어기제 검사, 집단미술치료도 했고
목장식구들도 개인적으로 만났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남의 죄와 고난은 잘 보이고 해석이 되며
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다는 말이 입에서 막 나오려고 하는지요.
입에 재갈을 물겠다는 적용때문에
기다려주고 견뎌주고 버틸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혀를 입천장에 대고 있으면
웃는 얼굴처럼 보이며 잘 견뎌집니다.
그러면서 속으론 그걸 못참다니, 고지가 얼마 안남았는데
믿음이 좋은 것 같은 분일수록 한심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그러면서 제 고양이 고난은 똥치우는 것까지 되었지만
오늘도 빨리 고양이가 어디로 보내지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그렇게 환경이 바꿔지길 바라지 말라고 하셔도
제 이해되지 않는 고난 앞에서는 이게 안되는 겁니다.
누구에게 말해서 공감을 얻을 수도 없는,
제가 고양이 고난이야기를 하면 모두 웃습니다.
아마도 어릴 때 의붓엄마가 고양이를 키우셨고
그 고양이를 보고, 바람피는 아버지때문인지 계속 중얼거리셨는데
그때 트라우마가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이 전혀 안나는 것은 엄청난 해리가 있어서 일지도 모릅니다.
진짜 제가 생각해도 웃기는 고난이 고양이 고난인데
세월호 사건이 나기 시작한 날 데리고 온 고양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고통으로 있습니다.
큐티를 막 끝내고 적용이 따끈따끈할 때
냄새가 그렇게 나는대도 아들이 안치워주는 고양이 똥을 치웠습니다.
한 집에 정말 싫어하는 동물이 함께 산다는 것은 고문입니다.
주님이 주신 시련이 될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제 죄가 객관적으로 보이지 않고, 확실히 주관적이라서입니다.
어제 집 근처에 사는 우리 목장 집사님과 함께 나눈 것처럼
오늘은 제 고난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에만 집중하겠습니다.
한걸음 떨어져 제 죄를 보고, 고양이고난을 통해서 주시는 음성을 듣겠습니다.
그 집사님이 처방해달라고 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목자라고 막 처방하지 않고 처방해달라고 할때까지 잘 기다리는
목자가 되기 위하여 오늘 한번 더 참는 적용을 하겠습니다.
학교에서 오늘도 남과 북의 분열을 겪을 수 밖에 없는
마주치는 교사와 학생들을 위해 눈뜨고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