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8일 목요일
야고보서 4:11-17
“비방하지 말라 선한 말을 하라”
나는 그동안 죄의 개념이 ‘잘못하는 것’이라고만 알았다. 잘못하지 않으면 선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야고보 선생은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라고 말씀하신다. 죄의 적극적인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던 내게 여지없이 한 방을 날리신 것이다.
그런 의미에 있어서 비방하지 말라는 것은 선한 말로 덕을 세우라는 말과도 같은 것이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는 안개 같은 인생이지만 영원한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한 나도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 자라는 말이다. 판단하지 말라는 말씀은 판단하되 연약한 형제를 돕는데 사용하라는 것이다. 이런 적극적인 행동이 오늘 내게 요구하시는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비방하면 내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누군가와의 말싸움에서 어떤 방법을 쓰던지 일단은 이기고 보아야만 했다. 어떤 경우는 내가 틀렸음에도 끝내 우기고 교묘한 말로 설득시키기까지 했다. 이것은 비밀인데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면서 뒷담화치는 것이 왜 그리 통쾌했는지 사단의 계략에 늘 말리고는 했다. 해서는 안 될 말임에도 당시에는 꼭 그 말을 하지 않으면 무언가 잃어버린 듯 혼란스럽기까지 했다.
오늘 야고보 선생은 수신인을 형제라고 호칭하면서 형제를 비방하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율법을 비방하는 것과 하나라고 부연해서 강조하고 있으시다. 주님께서 피 값을 지불하시고 산 귀한 생명에 대해서 비방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의 눈에는 허물이 보인다할지라도 정확무오하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형제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이라고 부르는 형제를 향해서 비방을 그치고 연약함을 세워주기 위해 오히려 기도한다면 그것이 바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끼리끼리 어울린다거나, 모여서 아무개 집사 권사에 대해서 험담을 일삼는 일이 너무도 비일비재 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고 보니 작금의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선박직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모든 국민이 분노하고 있음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망자의 대부분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다는 것은 위험을 감지했고 대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대기하라는 안내방송을 믿었기에 벌어진 끔찍한 인재임을 숨길 수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 모든 율법을 한 줄의 문장으로 정리하셨는데 바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하는 방법은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비방을 그치고 사랑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