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죽지 않았어!
작성자명 [김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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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2.22
제목 : 난 죽지 않았어!
성경 : 눅15:11~24
TV 광고가 생각납니다.
아침을 먹는 중에 아버지가 아들의 머리를 보고 머리가 그게 뭐냐! 하고 핀잔을 줍니다.
아들은 기분이 상했습니다.
아버지가 집을 나서면서 핸드폰을 찾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핸드폰 번호를 눌렸습니다.
아버지의 핸드폰이 울리면서 나의 희망 이라는 자신이 사진이 들어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들은 기분이 풀리고...
아버지는 눈이 오니 운전 조심해라! 하고 집을 나섭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었는데.. 정확한지는 광고를 보면 됩니다.)
싫은 소리를 하면서도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광고 컨셉으로 한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을 탕자의 비유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탕자를 중심으로 제목을 붙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제목을 붙였다면 아버지의 깊은 사랑 이 되지 않았을까요??
이 비유를 통해 아버지와 아들의 생각을 묵상해 보았습니다.
1. 아들은 계산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은 상속받을 재산은 당연히 자신의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미리 상속을 당겨달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수고로 얻은 재산이고, 은혜로 상속을 받는 것인데..
마치 자신의 재산을 아버지가 맡아두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것을 자신이 달라고 하는 권리는 있지만
평생을 모은 재산을 아낌없이 주는 아버지의 마음은 아들에게는 없습니다.
아들는 자신의 재산은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것이기에 자기 입맛에 맞게 방탕하게 써도 된다는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들은 있던 재산을 다 날리고 배고파하면서 아버지의 일꾼이 되는 길을 생각합니다.
돼지를 치는 일보다 아버지의 일꾼으로 일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계산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속을 받을 것이 있다는 것을 계산했고, 먼저 당겨 받을 수 있다는 것도 계산했고, 아버지의 일꾼으로 일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도 계산을 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아니라 자신의 손익계산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2. 아버지는 관계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둘째가 재산을 모두 탕진할 것을 알면서도 재산을 분배해 주었습니다.
재산을 잃어버려도 아들이 다시 태어날수만 있다면 아까워하지 않는 아버지입니다.
아들이 고난을 통해 계산적인 사고방식에서 관계 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면
재산도, 약간의 그리움도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는 아버지 입니다.
아들과의 관계가 좋아질 수만 있다면.. 그 어떤 것도..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올 것을 예상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에게 죽었던 아들이 살아오고, 잃었던 아들이 살아왔다. 고 기뻐합니다.
좋은 옷과 신을 주고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게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진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3. 아버지의 모습 속에 보여지는 하나님의 모습
아버지는 관계 중심적인 사람입니다. 많은 재산보다 아들과의 관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어떤 것보다 믿는 자들과이 관계를 중요시 여김니다.
비록 축복을 받기 위해 계산적으로 자신을 섬긴다고 할지라도, 혼내지 않습니다.
비록 아들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고난을 겪을 것을 알면서도 훈계보다는 스스로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욕심이 차 있는 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아들)의 뜻을 따라 자신(하나님)을 떠난다하더라도 그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힘들면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좋은 옷도 준비하고 좋은 신도 준비하고, 송아지도 살지워 놓습니다.
자신의 욕심을 따라 망한 아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계산되지 않는 사랑의 관계를 갖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죽었다고 살아온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도 육적으로 죽었다가 영적으로 다시 살아오기를 기대하심니다.
계산적인 믿음에서 관계적인 믿음을 갖게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4. 난 둘째 아들보다 더 멀리있는 사람입니다.
차라리 아버지의 일꾼이 되는 것이 더 낫다고 계산하는 둘째아들이 저보다 더 낫습니다.
전 아직도 돼지치는 일을 계속할지언정 한 번 떠나온 아버지 곁에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난 아직 죽지 않았어
지금은 비록 돼지를 치지만 난 능력이 있어!
많은 재산을 가지고 당당하게 다시 돌아갈거야!
이런 생각들이 저의 생각 속에 마음 속에 있음을 봅니다.
또한
하나님으로 인해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차리리 복 받기를 원하는 기복신앙이라도 있으면 좋겠지만...
전 그런 복을 받기를 구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아버지를 다시 만나기에는 멀고도 먼 길이 가로 막혀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을 향해 계산적인 생각도 하지 않지만, 관계의 복원(?)을 위해 서도 힘쓰지 않고 있는 지금의 저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
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모두 잃어 버려야 당신께 돌아갈 수 있나요?
왜 고난의 과정을 거쳐야만 하나님을 만나기 쉬운 건가요?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돈도 많고, 학식도 많고 명예도 많은 상태에서 당신을 만날 수는 없는 것인가요?
결국!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두느냐? 의 여부가 고난 있는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복있는 사람처럼 형통한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마음의 중심만 하나님께 있다면 돈이 많으면 더욱 좋고, 명예가 많으면 더욱 좋고, 권력이 있으면 더더욱 좋을 것입니다.
문제는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없다. 는데 있습니다.
견딜 수 있는 돼지치는 일일지라도
아직은 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할지라도
둘째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을까?
내가 더 잘나서 아버지께 가기 보다는
아버지의 사랑에 반응해 주는 것이 더 낫지는 않을까?
나의 이런 죽지 않는 모습일지라도
내가 극복하기보다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고난에 내 육이 죽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랑에 내 영이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실패한 성경 속 인물을 통해서는 실패하지 않는 법을 배우고
성공한 인물 속에서도 성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답은 나왔고, 결론은 났는데...
아직도 난 주저하고 있다.
아직도 그 무엇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반응하지 못하게 한다.
이러고 싶지 않은데..
언제까지
난 죽지 않았어! 라고 외치고만 있을 것인가?
이런 내가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