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1-13)
큐티하는 것이 요즘에는 꼭 반성문 쓰는 기분입니다.
그러고 보니, 큐티가 ‘내 죄를 보는 반성문 적기’ 였음을 새삼스레 절감합니다.
있어야만 할 사건으로 부녀지간이 객관화의 과정을 걷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서로가 우상이었던 자리를 하나님께 내어놓는 과정이 꼭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의 가장 치명적 약점이 ‘여자’였다고 한다면, 저의 가장 치명적 약점 ‘분노폭발’을 다시금 깨닫게 한 것도 감사합니다. 'G랄 총량의 법칙‘이 끝날 때도 되었는데...
그러면서 자녀와 관계회복이 안되는 부모 집사님들을 차별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들까지 와서도 왜 잘 안되지?’ 의아해 하면서... 정말로 ‘문제부모인가?’ 하면서 차별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2년전 목장에 조폭 집사님이 오셨는데, 그냥 좋았습니다. 지금도 좋아하는데... ‘분노폭발’의 형제애 때문은 아닌지?.... 그래도 일상에서의 ‘분노조절’이 안되는 집사님들을 보면서 ‘왜 안될까?’ 했는데, 미장원 사건과 더불어 이번 사건을 보면서 여전한 저의 모습에 할 말이 없게 되었습니다.
저 자신이 가난해지니, 긍휼한 마음이 듭니다. 나도 다른 사람도...
차별할 것이 없음을 봅니다. 옳고 그름의 심판도 할 자격이 없음을 봅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13)’
적용> 부끄러운 저 자신도 스스로를 너무 차별하지 않고 우울하지 않겠습니다. 할 일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