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큐티 말씀[야고보서 1:12~27)에서 내 죄를 또 보게 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는데 지금까지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의 유혹(temptation)을 단 한 번도 제대로 참아내고 이겨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을 들으며 내 죄 보기가 시리즈로 연결되도록 이번 평창에서 있었던 국제회의에서 열광적으로 발언하며 눈살을 약간 찌푸리게 했던 어떤 외국대표를 통해 과거 나와 똑 같은 도플갱어(doppelgauml;nger)를 보여주심으로 마치 과거를 보는 신비한 거울을 통해 과거의 나를 객관적으로 보게 하여 주셨습니다.
국제회의 때 마다 또 국내 관련회의에서도 약방의 감초처럼 한국어나 외국어나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기회만 주어지면 호시탐탐 마구 지껄여대며 내가 최고의 달인이고 최고수임을 드러내고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잘난체하는 맛에 중독에 되어 내 스스로가 내 분야에서 사울 왕이 되어 세상을 마구 휘지고 다니었던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게 하시니 내가 얼마나 질시와 미움의 대상이었을까가 체휼되니 전율이 옵니다.
질시와 시기질투로 모함까지 받아 사회적으로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한 것만 가지고 억울해 하며 이를 갈았던 나의 한 맺힘이 결국 자랑의 세상적 유혹과 시험에 걸려 넘어졌던 자업자득이고 구속사적으로 내 삶의 결론임이 비로서 깨달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으로서의 시험(test)은 나를 연단시켜 사탄의 유혹 시험(temptation)으로 건져내시기 위해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야고보서 1:27)함으로 향하게 하시려는 헤세드의 배려이시며 사랑이라고 넌지시 말씀하여 주십니다.
사탄의 시험인 유혹(temptation)은 사탕같이 달콤하고 치명적이어서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를 미혹시키고 기억시켜 육신이 덩달아 동조하고 빠져 들어 서서히 병들게 함으로 사탄의 사탕발림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끌어 당김으로 ‘에라 모르겠다’가 절로 나오게 하는 아편중독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으로 주시는 시험(test)은 세상적 달콤함으로 길들여져 간사해 진 혀와 육신의 감각으로는 도저히 말씀의 참된 뜻을 헤아릴 수 없음에 ‘즐겨 찾기’항목에 포함되지 아니함으로 인내함과 연단됨이 이루어지기 어려워 주님의 면류관은 보물찾기와도 같다고 해석하여 주십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이생의 자랑에 길들여 졌던 제 혀의 향연을 피하기 위해 혀에 재갈을 물려주시기를 원합니다.
듣기는 대충 하고 말하기와 혈기 부림은 속사포처럼 쏘아대는데 길들여진 큰 죄인이며 속물인 제가 듣기는 속히 하고(quick to listen) 말하기는 참을 인(忍)자 세 개를 마음에 써가며 신중하도록(slow to speak) 강권적으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복이 있는 자=생명의 면류관 후보 자=주님 평강이 깃든 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James 1:15/These evil desires lead to evil actions, and evil actions lead to death.)
의 보석과 같은 복음의 말씀으로 오늘의 깨달음의 축복 주시는 주님 사랑합니다.
경배합니다.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