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5월 2일 금요일
누가복음 1:5-25
“세례 요한의 출생을 알리다.”
누가는 한 사람 특별한 출생을 예고하면서 편지를 시작하고 있다. 그가 세례 요한이었다. 그의 가정은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는 가정이었다. 아론의 자손이었고 아비야의 반열의 제사장 가문이었다.
누가는 때를 알리는 ‘마침’이라는 단어를 8절에 쓰고 있는데, 이 시제가 바로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400년간의 하나님의 말씀이 중단된 시대를 마치는 마침표였다.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 가정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이 불임의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시대를 꿈꾸신다.
새 시대를 알리는 기쁜 소식의 시작은 노부부의 기도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벨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누가복음 1:13
그는 태어나기 전에 천사장 가브리엘을 통해서 이름이 정해졌고 출생이 알려졌다. 그는 가정에 기쁨이 될 뿐만 아니라 나실인으로서 삶을 살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 민족에게 기쁜 소식이 될 자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는 엘리야의 마음을 가진 자였고 능력을 겸비한 자였다. 주 앞에 먼저 와서 길을 닦는 자가 될 것이다.
어두운 땅에 드디어 빛이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암흑 같은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한 사람의 등장으로 누가복음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명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났을까? 라는 질문으로 말씀을 적용해본다.
나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인지를 먼저 돌아본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는가? 아니면 오실테면 오시고 정도로 피상적인 기다림은 아닌지 점검해본다. 진정한 사랑의 관계라면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내 대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한다고는 입술로는 고백하지만 주님을 맞고자 하는 나의 태도는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의 자세는 먼저 그리움이 있어야한다. 보고 싶어야 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는데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된다. 주님께서 오늘 오신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아브라함의 심정으로 의인을 찾기에 분주해지지 않을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의 가정을 구했던 것처럼 나를 통해 찾고 계시는 한사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아이들이 보내온 동영상에는 자신들이 물에 가라앉고 있는 그 순간에도 농담하고 죽음을 미처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조금 후면 침몰할 배 안에서 농담하고 있는 자들에게 배에서 탈출하라고 외치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꼭! 해야 할일이 아닌가?
죽어가고 있는데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위태한 순간을 목격하면서도 모른 척 눈감아버린다면 주님께서 나를 무어라 말씀하실지 끔찍한 마음이다.
예수를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나의 형제들에게 이웃들에게 그 배에서 내리라고 말해야만 한다. 죽음을 향해 침몰하고 있는 세월호에서 내리라고 외치는 것이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인 것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