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1: 1-11
제 인생에 인내란 말은 없었습니다.
시어머님과 시아주버님까지 모신 19년의 시집살이는
인내가 아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유치원 원장 일을 17년 한 것은
주 안에서의 인내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엄마없이 살았던 불행한 시절을 보상받기 위한
인정받기 위한 목마름이었습니다.
제게 이제 인내가 생겼습니다.
그 비결은 큐티로 적용한 '한번만 더' 또는 '오늘만 살자' 입니다.
도저히 갈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늘 하루만 더 학교에 가자 했더니
지하2층 미술실에 조그만 창문이 생겼습니다.
미술실에서 나올 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더니 만8년을, 햇수로 십년을 다니고 있습니다.
말씀때문에, 우리 아들 구원때문에 하루만 견뎠더니
어제, 고양이가 주방까지 나올 수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잘 서서 가는 딸이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해서
기도했는데 어제는 퇴직을 했습니다.
짐을 싸들고 온 지수에게 말씀때문에 안아주고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루만 더, 진짜 엄마처럼 살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하루만, 딱 한번만 더, 이것만'
이것이 구원때문에 할 수 있어서
인내를 온전히 이룰 수 있다는(4절)
'앎'이(3절) 그동안 들어둔 말씀 때문입니다.
두 마음 아니라 세 마음, 네 마음까지 한꺼번에 품어야 했던
슬픈 방어기제들이 (부인, 합리화, 투사, 허세, 부정, 왜곡, 해리)
다 물러갈 수 있는 것의 비결은 오늘 내 죄를 보는 것입니다.
어제 수요예배 마치고 돌아오니 아들이 저녁을 먹고 있다가
"엄마, 목사님께서 세월호 사건에 대해 뭐라 하셔요?"
목사님에 대해 묻는 것이 반가워서 지혜로운 답을 못할 뻔 했습니다.
"응..회개하는 그 한사람이 없다고 하셨어."
눈을 내리깔고 대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들과 딸을 낳아서 키울 때, 진짜 엄마가 아닌
자기만 안 가짜 엄마였고,
자식을 우상처럼 여기지도 못하는 환자였기에
오늘 하루 더, 한번 더 회개하고
시험에 떨어진 것과, 딸 지수 허리디스크와 퇴직과
아들 승옥이 예배회복을 위해서
이 시험 속에서 온전히 기쁘게 여길 수 있도록 적용거리를 찾겠습니다.
아...온전히 기쁘게 여기는 것은 정말 힘들것 같습니다.
그러나 오늘 명령이시니 딱 한번만 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