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30일 수요일
창세기 50:22-26
“요셉의 죽음”
4개월에 걸친 창세기가 대장정을 마친다. 혼돈과 무질서 속에 질서를 세우시며 시작한 창세기가 요셉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 그의 나이 110세였다. 파란만장이란 말을 이럴 때 쓸 수 있겠다. 그의 일생을 돌아본다. 7년을 수일처럼 여기며 사랑했던 여인 라헬에게서 어렵게 얻은 아들이었다. 그를 다른 아들보다 특별히 여겼다. 채색옷을 주문해서 입혔다. 이러한 야곱의 편애는 그의 삶을 굴곡진 곳으로 떨어지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불완전함을 이용하셔서 그를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 요셉에게는 잊을 수도 없고 잊혀 질 수도 없는 꿈을 꾸게 하셨다. 그의 별명이 꿈꾸는 자였다. 그에게 하나님께서 한 번도 꿈에 나타나셨다는 대목이 없지만, 그는 꿈을 통해 자신의 일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에덴을 만드시고 최초의 인간을 만드신 이야기로 창세기는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꿈꾸셨던 에덴은 이제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은 여전히 ‘꿈’이라고 말하고 싶다.
요셉은 17세에 시작된 애굽에서의 삶이 110세까지 이어졌으니 무려 93년의 세월을 애굽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한 곳을 바라보았다. 애굽에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영화와 부귀 속에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았다. 그는 진정한 꿈꾸는 자였기 때문이다.
유언을 남긴다. 앞으로 300년 이후에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 자신의 해골을 메고 올라갈 것을 요청하고 있다. 자신에게 모든 명성과 부를 주었던 애굽이 결코 그가 묻힐 곳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진정한 에덴은 모든 것이 갖추어진 풍요한 물질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이라는 말은 바로 예수를 믿는 그곳이 에덴임을 꿈꾸는 단어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합성어이다. 그리스도께서 거처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임마누엘이 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오늘도 세상 사람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위해서 살아간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먼저 하나님 나라를 꿈꾸고 하나님의 의의 실현을 위하여 살아간다.
이 땅에서 살지만 이 땅에 결코 머물 수 없는 사람들이다.
요셉은 애굽에서 살았지만 애굽인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리스도인도 세상에서 살아가지만 세상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이다.
임마누엘이신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