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 31:1
두 달 동안 묵상 했던 사무엘상이 우리 편 사울의 죽음을
끝으로 대 단원의 막을 내리나 봅니다. 저는 페시미스트도
아니고 아직 나이도 많지 않아서 죽음에 대하여 생각할 기회가
없었는데 졸지에 세월 호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생물학 적
-
죽음에 대하여 제법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다윗이 자기의 가족들을 구원하는 시간에 아기스가 이끄는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공격했습니다. 내 모든 것을 건 싸움에서
참패를 지켜봐야하는 ‘짱‘의 마음을 오너나 보스만이 압니다.(1)
‘바다 이야기’를 하다가 단속에 걸려 제 자식 같은 게임기들을
경찰들이 몰수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상황처럼 처절하고 엿
같았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퇴각하는 사울의 아들들을
추격하였고, 요나단, 아비나답, 말기수아 아들 셋이 재다 전장에서
죽었으니 사울은 인간 적으로 참으로 기구한 인생입니다.
사울이 체휼이 됩니다. 저라도 이 쯤 되면 자살을 선택했을 것
같습니다. 사울의 시체는 블레셋에 의해 농락당하고,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사울과 그 아들들의 시체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서 장사합니다.
함께 죽었더라(1-6)
시체를 벧 산 성벽에 못 박다(7-10)
야베스 주민들이 장사하다(11-13)
사울 왕의 인생이 결국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으로 좋게 시작한
인생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되어 나쁘게 마감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무엇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을까,
왕의 자리에 대한 욕심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았음에도 결국
내려놓지 못했고, 죽는 순간까지 가오를 지킬 욕심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것입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5)고 했습니다. 더 가지고 싶은 것, 잃고 싶지 않은 것,
남의 것을 탐하는 것, 모두 욕심입니다. 문제는 욕심이 우리의
눈을 가린다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 말고, 나를 보자. 내가 내려놓지
못하는 욕심이 무엇인가?
“내 눈을 열어 내 욕심을 보게 하시고,
살 희망 예수를 힘입어 구원을 얻게 하소서.“
2014.4.30.wed.헤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