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 원과 바꾼 내 자존심
작성자명 [박종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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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8.02.20
2008-02-20(수) 누가복음 14:25-35 ‘3,000 원과 바꾼 내 자존심’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나는 소중하니까요’ 어느 화장품 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나는 소중한 사람이고 내 것은 다 소중하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내 가정, 내 사업, 내 가치관이 소중하여
남들에게도 소중하게 여겨지기를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가족이 소중하지만 내 가치관을 따르지 않으면
언어폭력으로, 무시와 경멸의 표정으로 핍박을 하면서도
그건 사랑이라고, 너를 위한 것이라고
나중에 너도 알게 될 거라고 우기며 살아왔습니다.
부끄러운 기억들이 채 사라지지 않은 요즘
한 가지 깨달아지는 게 있습니다.
그건 사랑도 아니고, 너를 위한 것도 아닌
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랑이었다는 사실...
나를 더 이상 사랑할 힘이 없어지니 비로소 내가 보였습니다.
내 눈의 교만한 안력이 쇠잔해지니 내 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죄가 삼 천 가지쯤 된다고 하니 구원의 길이 멀게만 느껴지지만
그 길을 함께 걸을 지체가, 공동체가 있어 위안이 됩니다.
양념장에 흑미 밥, 돼 비지 찌개까지 싸다준 지체 덕분에
바쁜 아침에 여유롭게 식사하고 커피까지 즐길 수 있었습니다.
육의 양식을 풍성히 해주는 지체도 있지만
사랑의 채찍으로 영을 깨워주는 지체도 있습니다.
오래 전, 목장의 연세 많은 지체 앞에서
다른 지체를 정죄하며 남의 십자가까지 대신 지려 하다가
점잖게 나무람을 당하고 회개한 적이 있습니다.
아직 멀었다 느껴지는 내 죄를 보는 일이
가장 가벼운 내 십자가 지는 일임은 깨달아지지만
여전히 남의 죄가 커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슨 라면이 100 원 오른다는 소식에
마트마다 사재기하는 사람들로 만원이라는 아침 신문 기사를 읽고
오래 쌓아두고 기름에 쩔은 라면 먹고 싶어 환장한
미련한 사람들이라고 정죄하다가 옆을 보니
벌써 십여 일 전에, 식자재 업자에게 귀띔 받고 구입해서
이제 겨우 한 봉지 꺼내 먹은, 그 라면 한 박스가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저 라면 한 박스 다 먹으면 3,000 원 절약하는 건데
3,000 원과 바꾼 내 자존심이 부끄럽고
내가 하면 절약이지만 남이 하면 사재기가 되는
나의 뻔뻔한 가치관이 심히 부끄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