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28일 월요일
창세기 49:28-50:14
“야곱의 장례식”
자식을 향해서 마음껏 축복하고 생을 마감하다. 참 멋진 죽음이다. 그는 열조에게로 돌아갔다. 이처럼 돌아갈 곳이 분명한 사람은 행복자이다. 흔히들 사람을 평가할 때 “관 뚜껑을 닫았을 때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야곱의 죽음은 그 자체를 통해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나그네의 삶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40일 동안 향으로 처리하였다. 그 후 70일 동안 애곡하였다고 했다. 이것은 왕에 버금가는 장례식이었다. 그렇다면 피라밋 정도는 아닐지라도 자기를 위하여 근사한 무덤하나는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 땅에 묻힐 것을 요청하였다. 그는 행여나 요셉이 딴 마음을 먹을 것을 염려하였다. 허벅지에 손을 넣고 맹세를 시켰다.
그의 삶의 종착지는 애굽 땅이 아니었다. 잘 먹고 잘 사는 곳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곳이었다. 그는 눈을 감으면서 바라보았다. 바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였다.
파란만장했던 야곱의 삶을 돌아본다. 철부지 시절부터 147세까지의 삶 속에 스며있는 하나님을 향한 그 믿음을 본다. 부족했지만 늘 채우시는 하나님과 함께 손을 잡고 인생길을 걸어갔다. 연약했기에 강하신 주님을 바라보았고 태생적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20년 동안 라반이라는 광야학교를 통해 정직에 대해서 배웠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야곱이었다. 그러한 그를 찾아오셨다. 환도 뼈를 치셔서 야곱을 이스라엘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복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신다. 얍복강에서 그는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거듭난다. 그러나 야곱의 남은 생애는 쩔뚝발이 인생이었다.
우리는 믿는 순간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의 삶을 산다는 것은 걸음마부터 다시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간과할 때가 많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었지만 그 후에도 그는 이스라엘이 되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고난의 도가니를 통과해야만 했다. 가나안을 앞둔 길에서 그는 사랑하는 라헬을 죽음을 보았고 레아 역시 떠나 보내야하는 아픔을 겪었다. 끔찍이도 사랑했던 요셉을 잃어버리고 이별의 아픔을 맛보야만 했다. 그 애끓는 부성애 속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못 박아야만 하셨던 하나님의 눈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오늘도 막벨라 굴을 헷 사람에게 값을 치르고 샀다는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는 것도 우리의 구원과 무관하지 않다. 나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부르시기 위해서 값을 치르신 분이 계시다. 바로 예수님이시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테텔라스타이’를 외치셨다.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다. 이 말은 당시 상인들이 물건 값을 다 지불했을 때 썼던 말이라고 한다. 나의 죄 값을 치르셨다는 말이다.
절뚝발이 인생 야곱의 발이 되셔서 남은 생애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 수많은 세월을 함께 하시며 그의 걸음에 맞추신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라는 말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어느 집사님께서 ‘죽는 날까지 자식을 축복하는 야곱의 삶이 되고 싶다.’고 고백하셨다. 나 역시 야곱이 그토록 소망했던 하나님 나라를 나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아침이다.